내 안의 사고뭉치, 살살 달래야
술만 마셨다 하면 성당에 와서 주정을 부리는 사고뭉치 남자가
있었습니다. 특히 성탄절이 지나면 주사가 더 심해져 구유 세트
앞에 와서 시비를 걸었습니다.
"야, 꼬마야. 네가 망아지냐. 부모 잘못 만나 하필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아기 예수 다음 차례는 요셉 성인이었습니다.
"자기 애도 아닌데 뭘 그리 감싸고 드노. 어휴, 바보."
이번에는 성모님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처녀가 애를 낳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왜 웃고 난리야."
동방박사들에게도 한마디 잊지 않았지요.
"뭔 할 일이 없어서 그 먼 길을 찾아간 게야. 배부른 놈들."
그렇게 밤새도록 주정을 하는데 주사가 하도 심해 아무도 말리
지를 못했습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멀쩡한 그 남자가 어느 날 얌전하게 성당에
와서는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큰 죄를 지어왔습니다. 다시는 주정하지 않을게
요."
못 말리는 주정꾼이 웬일인가 싶은 본당신부가 자초지종을 물
었습니다.
"어젯밤에도 술에 잔뜩 취해 구유 세트 앞에서 주정하고 있었습
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모상이 움직이더니 제 뺨을 철썩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 처녀가 애 낳았다. 어쩔래? 네가 뭐 보태준
거 있어?' 하면서요.
얼얼한 빰을 감싸 쥐고 멍하니 서 있는데 이번에는 요셉 성인이
달려들지 뭡니까. '그동안 쌓인 게 많았어도 풀 데가 없었는데 너
잘 만났다. 딱 걸렸어' 하면서 이단 옆차기를 하는데 힘이 어찌나
세던지 제가 쓰러질 정도였습니다.
그때 아기 예수가 구유 안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마구간에서 자느라 춥고 힘들어 죽을 지경이니 그 옷 내놔!' 그러
고는 제 옷을 홀랑 벗겨서 구유로 가지고 가 덮고 자는 겁니다. 엄
동설한에 팬티만 입고 돌아갈 수 없어 '옷은 주셔야죠' 했더니 동
방박사 셋이 한꺼번에 황금과 몰약, 유향을 던지는 바람에 알몸으
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휴, 다시는 술 마시고 주정 안 부리겠습
니다."
그 후 남자는 절대 주정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남자의 이야기는
그 일대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습니다. 그리고 가정의 온갖 사고뭉
치들이 한밤중에 구유 세트 앞에 끌려와 치도곤을 당하고 철이 드
는 기적이 줄이어 일어났습니다. 그 성당은 지금까지 '조폭 가족
성당'으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상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감정을 잘 통제
하는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양반, 신사, 요조
숙녀, 참한 여자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엇나간
말과 행동을 하면, 상놈이라느니 돼먹지 못했다느니 못 배운 사람
이라느니 하는 비난을 퍼붓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죽을 때까지 점잖은 양반으로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성숙하지도, 완벽하게 철이 든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어른의 자아와 아이의 자아가 함께 자리를 잡
고 있는데, 가끔 아이의 자아가 사고뭉치로 툭 튀어나와 완전히
철이 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철들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사고뭉치를 '내면의 문제아
(the inner brat)라고 합니다. 이 사고뭉치는 자신의 욕구를 철저
하게, 빨리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특히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서
욕구를 채우는 데 시간이 걸리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또 결과가 어떻게 될지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무조
건 거절합니다. 그래서 마치 미운 네 살짜리처럼 소리를 지르고,
대화를 중단하거나 욕설과 비난을 퍼붓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
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중독이 되고, 파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도 내면의 사고뭉치 때문입니다.
이 사고뭉치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정상이 아
니라고 느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잠들어 있던 내면
의 사고뭉치가 깨어나면 냉정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입
니다.
평소 절제 능력이 부족하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전반적으
로 미성숙한 사람들의 내면에서 이 사고뭉치는 활개를 칩니다. 성
숙한 사람들이 가끔 사고를 치는 것은 스트레스가 누적되었기 때
문이죠. 심신이 지치면 내면의 사고뭉치를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 안의 사고뭉치를 마귀라고 여기기도 합니
다. 그러나 사과와 토마토가 다르듯이 내면의 문제아는 마귀와 다
릅니다. 이 사고뭉치는 다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기 위
해서가 아니라 순간적인 욕망을, 단순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곧 절제하지 못하고, 미숙한 자아라는 면에서 인간에
게 죄를 짓게 하기 위해 애쓰는 영악하고 유혹적인 마귀와는 전혀
다르지요. 이를 마귀로 여기고 제거하려 들다가는 문제아를 더 문
제아로 만들 수 있습니다. 심하면 분열증적 증세에 이를 수도 있
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고뭉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없애버릴 수 없으니 길을 잘 들여서 데리고 사는 것
입니다.
내면의 문제아를 잘 달래서 우리 삶의 중심에서 벗어난, 후미진
곳으로 밀어내어 그 영향력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내 마음속을 헤집고 다니지 못하게 적당히 따돌려 말을 듣게 하는
것이지요.
"나이와 사회적 신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상관없이 내 안에는 철없는 아이,
사고뭉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을 발견하고
잘 다루어야 내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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