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소(聖召)와 신원(identity) - 11.30. 금,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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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11-30 | 조회수439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2.11.30 금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로마10,9-18 마태4,18-22)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 내 신원의 열쇠가 있습니다.
‘나는 부름을 받았다.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바로 이게 성소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성소는 순전히 은혜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인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시고 부르신 주님이십니다.
평생 갈릴래아 호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참 나가 누구인지 모른 채 평생 익명의 존재로 살다가 세상 마쳤을 지도 모릅니다.
님을 따르는 여정에 오른 어부들입니다.
만약이라는 말이 부질없는 말이지만, 만약 우리 역시 주님과 운명적 은총의 만남으로 지금 여기 있지,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참 나를 잊고 어디서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 마치는 지요.
평생 과정을 통해서 완성되어야 할 과제인 성소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보시고, 부르시자 어부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의 응답입니다.
이런 과정이 우리가 평생 죽을 때까지 따라야 할 과제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시고 부르시면 우리는 버리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훤히 트인 대로를 주님 따라 가는 게 아니라 매일 주님과 함께, 또 형제들과 함께 길을 내며 가는 성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에 협조자로 참여함이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선교는 우리의 본질적 사명이자 존재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선교의 모범이 되셨습니다.
어디서나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 선교의 본질입니다.
지난 20차 총회에서도 선교의 본질을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것(witness God's love)'으로 정의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모르면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하여 부단히 세상을 향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미기도를 바치는 우리들이요 삶과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들입니다.
수도자든 평신도든 주님 따라 선교 사명에 충실하여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삶보다 아름다운 삶을 없을 것입니다.
수도원 자체가 선교의 장이자 치유의 장입니다.
얼마 전 저의 9월 강론집, ‘삶의 여백(餘白)’이란 제목을 보고 좋아하던 분의 모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여백(餘白), 여유(餘裕), 여가(餘暇)가 없는 팍팍한 세상이라
수사님들이 지금과 같은 연 피정을 좋아하는 까닭도 넉넉한 내외적 여백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동시에 ‘힐링(치유)의 장’, ‘힐링(치유)의 센터’입니다.
위로와 평화, 치유를 위해 끊임없이 수도원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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