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조류를 만들라 >
저는 시골에서 자랐고 그 시골에서 자라면서 천주교를 다녔던 같은 나이 친구가 셋 있었습니다. 현제 저희 셋은 모두 수원교구 사제들이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신학교에 들어간 친구는 지금 동탄에서 한 본당의 주임신부를 하고 있는 김 베드로라는 친구인데, 사실 그 친구가 가장 늦게 성당에 다닌 친구였습니다. 중학교 때 세례를 받고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보다 더 먼저 성당을 다녔던 저와 또 다른 친구에게는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기 에제키엘이라는 친구는 제가 성당 나가자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저와 함께 성당에서 복사를 섰습니다. 저희는 시골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서 복사를 서러 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도 군대를 다녀오더니 신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다른 충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저만 달랑 혼자 남았습니다. 그들과 대화도 통하지 않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제가 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물론 제가 신학교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는 여러 번 말씀드렸듯이 ‘행복’이라는 것을 통해 주님께서 저를 불러주신 것에 있지만, 사실 신학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하였던 것은 제 두 친구가 다 신학교에 들어가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들어갔던 친구가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다시 복학 할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둘이 신학교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그도 1년만 쉬고 복학하여 우리 모두 사제가 되게 된 것입니다.
저희는 저희 친구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나타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니모를 찾아서’라는 열대어가 나오는 컴퓨터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그 애니메이션에서 바다 속에는 빠른 조류의 흐름이 있습니다. 그 조류에 빨려 들어가면 웬만한 물고기들도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아 그것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회오리바람에 빨려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삶에서도 이런 조류가 반드시 있다고 믿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나쁜 조류 속에서 함께 살고, 또 좋은 조류도 함께 존재합니다. 어떤 조류에 자신의 몸을 맡기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조류 속에 일단 들어가면 자신의 의지로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세상 속에 있는 이 조류의 힘이 ‘상황의 힘’과 같다고 봅니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한 방향을 향한 상황에 휘말리게 되면 거기서 혼자 빠져나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왜 히틀러의 어처구니없는 명령에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복종하였을까요? 그 상황의 힘에 눌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의 힘에도 좋은 상황의 힘이 있습니다. 바로 좋은 쪽을 믿는 이들이 모여서 형성하는 힘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네 사람이 움직이지 못하는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사실 중풍병자란 뜻은 혼자서는 그리스도께 갈 힘이 없는 사람을 뜻하고, 그는 혼자서는 절대 그리스도께 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가진 이들의 조류에 휩쓸리니 그도 함께 그리스도 앞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네 명, 즉 믿음의 조류를 일으킨 그 네 명의 믿음을 보고 이 중풍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이 조류에 편승하기만 해도 그 조류의 덕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교회가 모이기를 원하셨던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신의 이름으로 두세 명이 모인 곳에 당신도 함께 있겠다고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셔서 떨어져 있던 토마스를 사도들과 함께 모이게 하신 것이 이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철새들이 함께 이동하는 것은 그래야 힘이 덜 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나라는 함께 행복한 곳이고, 이 세상은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장소입니다. 네 명이 같은 뜻을 갖고 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고 지붕까지 뜯어낼 생각을 했던 것처럼, 마음에 맞는 신앙인이 있다면 함께 하는 것이 서로에게 큰 힘이 됩니다.
하느님이 모르시는 것 중에 전 세계의 수도회 수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만큼 수도회가 많다는 뜻입니다. 이는 한두 사람의 영성으로 한 영성의 조류를 만들어서 사람들이 그 조류에 들어올 수 있도록 시작한 인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가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가 항상 완덕이고 사랑이고 그리스도이라면 믿는 이들끼리 모이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물론 가장 큰 믿음의 조류인 교회에 편승하고 있는 상태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이 개인의 것보다는 함께 할 때 훨씬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혼자 힘으로 무엇을 하려하지 말고, 되도록 서로 일치해서 함께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