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대로 사는 게 답
신학교 동기인 엄 신부와 허 신부가 동시에 주임신부 발령을 받
았습니다. 엄 신부는 강론도 잘할 뿐만 아니라 늘 기도하는 모습
을 보이고, 옷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차려 입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시계처럼 정확하게 사느라 스트레스도 많았지만 그
런 자신에게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한 만
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격해서 신자들은 어려워하며 신부 가까
이에도 가지 못했습니다. 미사 시간에도 조는 사람은커녕 기침 소
리 하나 없어서 엄숙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 날 엄 신부는 문득 허 신부의 근황이 궁금해져서 그를 찾
아갔습니다. 하지만 본당에 들어서자마자 눈살부터 찌푸려졌습니
다. 수도원처럼 고요한 자기 본당과는 달리 성당 마당은 시끌벅적
했고, 신자들은 로만칼라(성직자의 신분을 나타내는 평복인 수단
의 목 부분에 두르는 흰색의 칼라)를 한 자신을 보고도 어려워하
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일학교 미사는 노는 시간인지 미
사 시간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노는 아이들로 개판이
었습니다. 화가 난 엄 신부는 허 신부를 만나지도 않은 채 발길을
돌리면서 구시렁거렸습니다.
"이놈의 성당은 1년도 안 돼서 문 닫겠군."
그로부터 5년 후 인사 이동 때 엄 신부는 아주 작은 본당으로,
허 신부는 큰 본당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속이 상한 엄 신부가 주
교님을 찾아가 따져 물었지요.
"제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안다. 그런데 너보다 허 신부 본당 신자 수가 두 배나 더 늘었
는데 어떻게 하냐? 게다가 헌금도 너보다 많이 모았더라."
한 달 전 엄 신부는 건축 기금을 모으기 위해 부유한 성당에 가
서 강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총 1억 원을 모았는데, 그 성당에
도움을 청하러 온 손님 신부 가운데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역시 건축 헌금을 청하러 온 허 신부가 1억 5,000만 원이
나 모금해 엄 신부의 기록을 깨뜨렸다는 것입니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엄 신부는 허 신부를 찾아 술집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신학생 때부터 내가 너보다 공부도 잘하고 기도도 많이 하고
외모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더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어리바리하
고 말도 잘 못하고 꾀죄죄한 네가 어떻게 신자 수를 내 두 배나 늘
렸느냐? 그리고 1억 5,000만 원이나 모금했다면서? 대체 비법이
뭐야?"
"나는 내가 잘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열심히 살지도 않았
고. 그냥 생긴 대로 살았을 뿐인데 신자 수가 왜 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또 헌금은---- 너도 알지만 난 말을 잘 못하잖아. 그래
서 강론대에 그냥 서 있었어. 그랬더니 신자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돈이고 반지고 다 꺼내주더라고."
엄 신부는 스스로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자신이 하느님 안에서
사는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며 살았습니다. 반면 허
신부는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자기가 생긴 대로 살았습니다. 그
래서 엄 신부보다 행복했고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능력에 따라 순리대로 살면 나도 주변
사람도 편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자신의 만족이 아닌 다
른 것을 위해, 과시하기 위해 애쓰는 것만큼 힘든 삶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면 우
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 인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행복해지
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애써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생긴 대로 사는 것이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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