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Lectio Divina의 생활화- '12.12.24.월,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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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12-24 | 조회수44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12.12.24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사무 하7,1-5.8ㄷ-12.14ㄱ.16 루카1,67-79
-Lectio Divina의 생활화-
제 말이 아니라 고 함석한 옹의 유명한 글 제목입니다.
먹고 사는 일에, 생존에 급급하다 보니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요즘 유행을 타고 있는 렉시오 디비나는 별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예언자들이나 사도들은, 또 성인성녀들은 예외 없이 렉시오 디비나의 대가였습니다.
지금 여기서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라의 역사나 공동체의 역사, 개인의 역사로 확대되어야 비로소 렉시오 디비나의 완성입니다.
바로 한국역사를 하느님의 눈으로 렉시오 디비나 한, 무의미해 보이는 한국사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의미를 찾고자 분투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도덕, 국어, 국사…의 순서였습니다. 도덕, 국어, 국사의 기초위에 기타 교과였습니다. 사람됨의 우선순위가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히 드러나는 배열순서입니다.
그 바탕위에 기타 실용 교과였습니다.
민생(民生)도 사상누각이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입니다. 도덕적 기강이, 민본이 바로 설 때 저절로 해결되는 민생입니다.
자업자득의 결과입니다.
오늘 렉시오 디비나의 관점에서 보면 말씀의 핵심이 잘 들어납니다.
그대로 다윗의 삶의 역사에 대한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다윗의 역사는 바로 하느님이 주어가 된 역사임을 보여줍니다. 주어인 하느님을 빼놓으면 다윗의 역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라 역사의 렉시오 디비나, 공동체 역사의 렉시오 디비나, 각자 삶의 렉시오 디비나가 절실합니다.
비로소 겸손이요 감사와 찬미가 뒤따릅니다.
오늘 복음의 즈카르야 찬가(canticle) 역시 초대교회가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활동을 렉시오 디비나한 결과입니다.
비로소 의미 충만한 삶임을 봅니다.
요한의 삶에서 예수님을 빼 버린다면 요한의 삶은 무의미하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통해 활동하십니다.
바로 이런 진리를 깨달아 알게 하는 게 렉시오 디비나의 은총입니다.
몰라서 ‘내가…했다.’지 깊이 들여다보면 ‘하느님이…하셨다.’ 의 역사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모를 때는 교만과 무지에 불평불만의 삶이 됩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우리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 마음에 새기는 복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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