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찬미예수님
전해오는 말에 예쁜 여자하고 결혼하면 몇 년 행복하다고 합니까?
-3년-
착한 여자하고 결혼하면 30년이 행복하다고 하고~~
지혜로운 여자와 결혼하면 3대에 걸쳐 행복하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이쁜 여자 좋아하는데 그것 다 헛것입니다.
아무리 이뻐도 세월이 지나면 다 쭈그렁할머니 되고 그 얼굴이 그 얼굴입니다.
어느 총각이 제게 와서 “신부님, 저 장가 좀 보내주십시오.”
이제껏 약 870번 정도 혼배미사를 했습니다.
60쌍 정도 중신을 해서 이어주었어요. 그런데 그 60쌍에게 한 번도 양복 한 벌 얻어 입어본 적이 없어요...
神父가 중매 서니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끝입니다. ^^
뭐 잘 살면 되지~~
30살 넘은 총각이 “신부님, 제 능력으로는 장가 갈 재간이 없으니까 신부님이 어떻게 장가 좀 보내주십시오.”
“그럼 네 취향이 뭐냐?”
이 총각이 이런~~이런~~ 여자를 골라주십시오.
하고 써 왔는데 내가 한 번 읽어볼게!
1) 남편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
2) 날이 새기 전에 음식을 준비하며 밤늦도록 일하여 가정경제를 일으키는 여자(이건 순 도둑놈이야~~)
3) 어려운 사람 도와주는 마음이 따뜻한 여자(이건 그래도 괜찮아!)
4) 입만 열면 지혜로운 말만 튀어나오는 여자
5) 내조를 잘해서 남편을 성공시키는 여자
6) 하느님을 경외하며 덕행이 있는 여자
이런 여자가 있으면 결혼하겠어요...
제가 “야, 이놈아! 그런 여자 있으면 내가 데리고 살지...너 주겠냐!” ^^
결국 장가는 보내줬어요~~
비록 이 여섯 가지는 채우지 못했지만 입이 무겁고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두는 여자를 하나 골라 알콩달콩 깨 볶으며 잘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으로 돌아가면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저쪽 편으로 건너가십니다.
성서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내 잠이 드셨다고 합니다.
왜? 육신이 피곤하셨으니까~~
여러분들 사람의 일 중에서 제일 힘든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을 만나는 게 제일 힘이 듭니다.
단순한 노동은 쉬면 금방 회복되지만 사람 만나서 기를 뺏기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 진이 다 빠지셨기에 흔들리는 배에 머리를 기대고 이내 잠이 드셨던 겁니다.
배가 한 가운데에 나오니까 뭐가 불어 왔다고 합니까?
잔잔하던 갈릴리 호수에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고 했습니다.
갈릴리호수는 지금도 이렇게 변화무쌍하여 서풍이 불기 시작하면 거칠어져서 배를 뒤집어 놓습니다.
바다가 거칠 때 배를 끌고 나갈 사람은 없지요!
당연히 잔잔할 때 나갔을 겁니다.
그런데 중간 정도 가니까 배가 뒤집어지고 난리를 치는 겁니다.
아무튼 거기까지는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잠이 드셨고.....
바람이 조금 불 때는 너무 피곤하니까 잠을 잘 수도 있는데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배에 물이 가득 차서 배가 가라앉게 생겼는데도 정말 주무시고 계셨던 걸까!!!
배가 가라앉을 정도면 몸에 물이 찼다는 이야긴데.....그런데도 주무시고 계신다???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때는 눈만 감고 제자들의 상황을 보고 계시지 않았을까!
‘이 놈들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실눈을 가만히 뜨고 그런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셨을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협박하고 공갈을 칩니다.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며 원망조, 협박조로
“저희들 죽게 되었는데 어찌 돌보지 않으십니까?” 더 나아가
“우리가 만일 죽으면 당신 책임 져!”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잘 되면 지가 잘 나서 잘 되었고~~
안 되면 내가 이렇게 죽게 생겼는데 당신 보고만 계실 거냐!
벼랑 끝에 서 있는데 떨어지게 내버려 두실 거냐!
이것은 믿음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라 원망하는 겁니다.
그 말에는 만일 내가 잘못되면 모두 다 당신 책임이다!
오늘 제자들은 우리들이 죽게 되었는데 왜 돌보지 않는 겁니까?
이렇게 원망하는 말을 하는 제자들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런 제자들의 꼬락서니를 보다가 일어서셔서 바람을 행해
“잠잠해져라!!!”
그리고 제자들에게 일침을 가하십니다.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너희들 나 따라다니면서 내가 빵과 물고기 몇 마리로 몇 만명을 먹이고
죽었던 아이로의 딸을 살리는 것을 보았고~~
썩어 문드러진 나자로를 부활시켰고~~
일곱 마귀가 든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마귀를 쫓아낸 능력의 주님을 보았으면서~~
이 하찮은 풍랑을 보고 나를 협박해? 어찌 그리 믿음이 없느냐! 그리고 나에게 겸손하게 청하기보다 원망하고, 협박하고...손가락질하고...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보고 바람과 파도를 가라앉혀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하도 측은해서 풍랑을 가라앉혀 주신 것입니다.
성서에는 사람들을 치유해 주실 때 대부분 그들의 믿음을 보고 치유시켜 주셨지만 자연을 상대로 한 기적은 하느님의 권능 그 자체를 드러내는 기적입니다.
죽음의 밑바닥까지 내려 간 그 제자들의 믿음을 본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배가 덜 흔들리니까 평화를 찾았습니다.
여러분, 바다위에 배는 흔들리게 되어 있죠?
어떤 상태에서도 배는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의 바다를 가는 쪽배가 아무리 바다가 잔잔해도 흔들리게 되어 있으며 배 위에서는 함부로 일어서면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이 흔들리지 않은 이유는 바람과 바다가 잔잔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호된 꾸지람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의 권능의 힘을....
예수님을 다시 믿음으로 모심으로써 평화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속의 평화는 환경에 따라 변화됩니다.
어떤 사람이 늘 평화롭고 기쁨으로 충만하여 사람들이 보면
‘저 자매는 세상 걱정 없으리라.....’
그런데 실제로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자매가 얼마나 고통 중에 있는지 알게 되면
‘내가 이 자매의 입장이라면 자살이라도 할 텐데....’ 하고 놀랍니다.
그 자매는 억지로 평화로운 것이 아니고 억지로 기쁘게 사는 것이 아닌.....
내면 깊숙한데서 올라오는 기쁨과 평화로 삽니다.
삶의 벼랑 끝에 서 있어도 정신을 잃지 않고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았기에 평화로울 수 있었습니다.
바다의 풍랑도...바람도 그 이후에 안 일어난 걸까요?
인생의 어려움과 바다의 풍랑도 목숨을 던져야 하는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서 우리는 뭐든 붙잡으려고 합니다.
골로사이서 4장 15절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내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쾌락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속적인 가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을 다스리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이 미사에 참석하시면서 평화로우십니까?
평화로우신 분도 있지만 미움 때문에/ 분노 때문에/ 억울함 때문에
강론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분도 계실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평화로 다스리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를 평화롭게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큰 파도를 하나 넘으면 또 하나의 파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계곡을 하나 넘으면 다시 깊은 계곡이 있습니다.
자신의 배가 근심 걱정으로 떠다닐 때는 평화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힘들 때 주님께 부르짖듯이 우리도 늘 부르짖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을 찾고 난 뒤에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 몸 안에있는 신성을 못 보았던 것입니다.
바람과 파도를 가라앉히는 예수님의 신성을 보고난 뒤 그들은 평화로울 수 있었습니다.
능력을 가지신 분이 나와 같이 내 인생의 한 가운데를 걸어가고 계신다!
는 그 믿음은 우리들의 삶이 고통과 풍랑 속에서도
우리를 의연하고 굳건하고 평화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자신의 마음이 불안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할 때
예수님께서 바다와 바람에게 하신 말씀처럼
“고요하고 조용하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바다에게 하신 말이 그 출렁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왜 이렇게 출렁거리고 호들갑을 떠느냐....고요하고 조용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중에 하느님과 나만의 기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교우여러분, 이제껏 신자로 사시면서 나 혼자만이...
촛불을 켜고 고상 앞에서 주님께서 나를 내려다보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껴보며 기도한 적이 신앙의 삶 속에서 몇 번 있습니까?
고요하고 잠잠하라!
시끄러울 때는 예수님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불행은 염려와 근심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다보면 선이 굵어지고 담대해 집니다.
많은 경우 걱정을 당겨서 합니다.
그 날 걱정은 그날에 맡기라고 했는데~~
우리는 염려와 근심덩어리를 미리 당겨서 합니다.
우리가 당겨서 느껴야 할 것은 감사뿐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해결해 주실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합니다....이것은 80점짜리입니다.
그러나 감사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주님, 이건 분명히 해결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이렇게 미리 감사하면 이것은 100점짜리입니다.
좋은 결과가 있을 때 ‘하느님 내 기도 들어 주셨구나!’
그 사람도 아름다운 신자이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려운 고비가 넘어가도 하느님께 영광 돌리지 않습니다.
그냥 지가 잘 나서...될 때가 되어서 해결되었다고 착각합니다.
참다운 신앙은 미리 당겨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대 당겨서 근심 속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점점 풍랑을 거세게 받게 되어있습니다
저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사제입니다.
이제는 염려, 근심 안 하고 삽니다.
쓰레기통에 넣어도 살아 날 자신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내려가라고 하시면 그 속에 들어가서도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 예수님 붙들고 살았고~~
성모님 전구를 느꼈고~~
예수님께서 내 삶의 중심에 있을 때는 환경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그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계시지 않을 때는 꽃밭 속에서도 불안하고 평지에 있어도
넘어질까 걱정입니다.
예수님 계실 때 절벽 끝에 있어도
‘그래, 까짓 거 떨어져 봐야 죽기밖에 더 하겠어? 죽으면 예수님 곁에 갈 텐데...
무슨 걱정이야!’
이렇게 선이 굵어집니다.
사람의 말에 휘돌림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이 칭찬하면 헤헤~~ 하다가
손바닥을 바꿔서 칼을 한 번 휘두르면 죽을 것 같은 미움으로 괴롭히는 이 사람
피하면 저 사람 만나고~~
한평생 나한테 좋은 사람만 골라 살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나 자신이 하느님 중심으로 굵은 기둥을 가진 느티나무처럼 산다면.....
어떤 사람에게도...어떤 환경 속에서도~~
불구덩이 속에 들어간다 해도 주님이 구원해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평화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
저도 사제생활하면서 그 많은 고통을 당할 때 처음에는 하느님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제들은 평탄하게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러나 지나고 보면 고통이 은총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피정 지도할 때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내 이야기를 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비극은 어떤 어려움이나 고통과 역경 속에서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신다는 평화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어느 성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 계신 데 두려워 할 게 뭐가 있습니까?
거센 바람이 불면 배가 가라앉기 밖에 더 하겠습니까?
배가 가라앉으면 주님 곁에 가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신앙은 담대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죽음의 골짜기를 가더라도 기쁨과 평화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겁니다.
우리에게 성체가 있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나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이 계시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기도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두려워 할 게 뭐가 있습니까?
마음의 눈을 떠서 성서를 읽을 수 있는데 뭐가 두렵습니까?
오늘 이 미사를 통해서 지난 한달 동안 인생의 바다 속에서 주님을 원망하며
‘이렇게 힘든데 저 버려두시겠습니까?“
예수님, 그 말까지도 노여워하지 않으시고 받아주실 겁니다.
오늘 사제의 입술을 통해 성체를 통해 여러분에게 담대한 마음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 카페에서
2013년 1월 배티 은총의밤 - photo by bened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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