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과의 관계 -충만한 기쁨- 2013.1.12 주님 공현 후 토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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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1-12 | 조회수34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3.1.12 주님 공현 후 토요일 1요한 5,14-21 요한3,22-30
-충만한 기쁨-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이 말씀은 그대로 우리 수도승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평생수도생활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우리는 작아져야 하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늘 ‘사랑하는 여러분’으로 시작되었음이 주목됩니다. 이 또한 우리 향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로마에 있는 한 수도형제로부터 받는 편지 서두는 늘 ‘사랑하는 원장수사님’으로 시작됩니다. 하여 편지를 받게 되면 본능적으로 ‘사랑하는’이란 말마디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사실 저 또한 그 수도형제에게 편지할 때는 꼭 ‘사랑하는…수사님께’로 시작합니다. 이뿐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 편지를 할 때도 저는 ‘존경하는…’, 또는 ‘친애하는…’이란 호칭을 꼭 붙이곤 합니다. 이런 호칭 모두가 친밀감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애송했던 ‘하늘과 산’이란 자작시가 떠올랐습니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산이 상징하는바 요한이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주님 배경 있어 아름다운 요한이요 우리 수도승들입니다.
참 무의미하고 공허할 것입니다.
우선적인 게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주님을 알게 되고 ‘참 나’의 발견에 실현입니다.
도대체 관계없이는 주님을, 나를 알 길이 없습니다. 과연 관계는 의미요 존재다라 정의할 만합니다.
관계와의 단절 고립이 바로 자폐현상이요 바로 이 상태가 지옥입니다. 관계를 떠나선, 관계없이는 도저히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입니다.”(1요한5,20bc).
주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한 집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도 남남으로 살다가 헤어지는 부부도 있듯이 평생을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과 남남으로 무관(無關)하게 살다가 수
주님과 깊어지는 관계와 더불어 깊어지는 믿음, 희망, 사랑이요 여기서 샘솟는 영원한 참 기쁨, 참 행복입니다.
다음 요한의 고백은 그대로 우리 수도승들의 고백입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은 커지시고 나는 작아질 때 겸손이요 기쁨이지만, 반대로 나는 커지고 주님은 작아지셔서 내가 주님을 가려버릴 때 바로 이게 교만이요 기쁨도 메말라 버립니다.
점점 커지셔야 할 분은 주님이시며 점점 작아져야 할 사람은 우리들입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짐으로 주님을 닮아 ‘참 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깊게 해 주시고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성자를 통하여 저희를 새로이 창조하셨으니, 주님의 은총을 저희에게 주시어, 사람이 되신 성자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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