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향백나무,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 - 레바논의 향백나무. 히말라야산맥의 서쪽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동쪽 지역에는 엄청나게 키가 크고 몸통이 굵게 자라는 소나무과의 상록 침엽수가 분포한다. 높이는 30~50미터에, 굵기는 10미터에 이른다. 히말라야산맥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생김새가 잎갈나무와 비슷하지만 낙엽 침엽수인 잎갈나무와는 다르게 상록성이라서 개잎갈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달리는 히말라야시다, 히말라야삼나무, 설송(雪松)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이 나무를 빼닮은 나무들이 오래전에 레바논의 높은 산악지대에도 빽빽하게 분포해 있었다. 지금은 그 자취를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지만, 일찍이 1천 년을 넘게 사는 장수 나무로 알려져 있었다. 또한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 나무로서 구약성경에도 70번 이상 등장할 정도로 빼어난 나무였다. 레바논개잎갈나무가 그것인데, 우리말 성경에는 향백나무 또는 레바논의 향백나무로(개신교에서는 백향목으로) 번역되어 나온다(이 글에서도 ‘향백나무’라고 표기하기로 한다).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 너머에 있는 나라인데, 이 이름에는 히브리어로 ‘하얗다’라는 뜻이 있다. 레바논의 산악지대가 워낙 높은 지역이어서 늘 눈으로 덮여 있는 까닭이다. 향백나무는 이사야 예언자가 ‘레바논의 영광’(이사 35,2; 41,19; 60,13)이라고 칭송했을 정도로 아름답고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나무였다. 나무 자체가 길고 굵은데다가 곧게 자란다. 그리고 추운 지방에서 생장하는 까닭에 목질이 견고한데다가 쉽게 벌레 먹거나 부패하지 않는다. 그러니 일찍부터 건축재나 가구재로 요긴하게 쓰였다. 또한 모양새가 우람하고 위엄 있어 보여서 오늘날까지도 관상용으로, 공원 조경수와 가로수로 인기가 높다. 뿐만 아니라 열매에서 나오는 기름은 곰팡이나 해충에서 보호하는 기능이 있어서 모세오경에는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을 정결히 할 때 향백나무(의 기름)를 사용하라고 규정되어 있다(레위 14,4.15-18). 그리고 수지(樹脂)는 진한 향으로 숲에 상쾌한 기운이 돌게 하는 기능이 있으며, 미라를 만드는 방부제나 향수로도 쓰였다. 성경에서 향백나무는 힘과 권능의 상징 예전에 레바논의 산악지대에는 이처럼 유용한 향백나무들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당연히 레바논 산맥의 향백나무 숲은 주변의 건조한 사막지대에 자리 잡은, 그래서 나무가 부족했던 나라들에게 아주 부럽고 매력적인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는 1500년 동안이나 레바논의 침엽수들을 베어다가 배, 신전, 성채 등을 짓고 만드는 데에 썼다. 아시리아도 기원전 12세기부터 레바논 목재 경쟁에 끼어들었는데, 기원전 701년 유다를 공격한 바 있는 산헤립 임금은 자기가 레바논의 나무들을 베어내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노라고 떠벌린 바 있다(2열왕 19,23). 그리고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마침 레바논의 향백나무 숲이 페니키아의 도시국가인 티로의 소유였던 시기에 티로와 우호적인 관계였다. 그 덕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기원전 1000년경) 티로에서 수입한 향백나무로 궁전을 지었다(2사무 5,11). 뒤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향백나무로 성전을 지었고(1열왕 5,19-24), ‘레바논 수풀 궁’이라는 궁전도 지었다(1열왕 7,2-3). 이렇게 해서 향백나무는 다윗 왕가의 상징처럼 되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다윗 왕가를 레바논에 견주어서 말했다(예레22,6.23; 에제 17,3-4). 아마도 향백나무로 된 건축물을 많이 보유한 까닭에 향백나무 숲이 우거진 레바논과 비슷해 보였던 모양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서 유배살이를 하다가 돌아와 제2 성전을 지을 때도 향백나무를 사용했다(에즈 3,7). 그때 레바논 숲의 주인은 바빌론을 꺾고 고대 근동을 제패한 페르시아였다. 한편, 시편 저자는 향백나무를 ‘주님의 나무’라고 불렸다(시편 104,16). 에제키엘 예언자는 향백나무가 ‘하느님의 동산’, 곧 에덴동산에서 자라는 과실수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했다(에제 31,8). 오래된 유다 전승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 시대에는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는 과실수였는데, 원조들의 범죄로 땅이 저주를 받으면서 생산성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날, 이스라엘 땅은 에덴처럼 풍요로워지고(에제 36,35) 향백나무도 열매를 맺으리라고 예언한다(에제 17,23). 그리고 성경에서 향백나무는 힘과 권능의 상징으로 소개된다. 그래서 시편 저자는 악인을 풀이라고, 의인을 야자나무와 향백나무라고 말한다(92,8.13). 또한 향백나무는 키 큰 나무의 대표였다. 그래서 성경은 향백나무를 키 큰 나무라고, 우슬초를 가장 작은 초목이라고 말한다(1열왕 5,13). 그리고 향백나무는 아름다움과 위엄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아가서는 연인의 빼어난 모습을 향백나무에 비겨서 노래한다. “그이의 모습은 레바논 같고 향백나무처럼 빼어나답니다.”(아가 5,15) - 레바논의 향백나무 열매. 구세주와 그분의 왕국을 상징하는 나무 그러나 향백나무가 성경에서 늘 긍정적인 의미로만 소개되지는 않는다. 그 큰 키와 우람한 풍채가 때로는 현세적인 오만방자함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래서 이사야는 향백나무와 참나무들 위로 주님의 날이 닥치면, 세상의 교만이 심판받으리라고 예고한다(2,12-13). 시편 저자는 주님의 목소리가 교만한 향백나무를 부러뜨리고 사막을 뒤흔들 만큼 장엄하다고 찬미한다(29,4-9). 이렇듯 향백나무는 성전과 궁전 건축에서부터 무역 상품을 포장하는 상자, 배의 돛대, 심지어 우상을 만드는 데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용되었다. 그러면서 힘찬 기상과 아름다움, 위엄과 영광, 이스라엘의 번영, 의인의 성장과 번성을 상징했고 때로는 교만, 사치의 대명사로 이해될 만큼 값지고 귀한 나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요긴한 쓰임새로 고대 근동인들에게 사랑받아온 레바논의 향백나무 숲은 오랜 벌채로 말미암아 손상된 상태다. 몇몇 나라들이 향백나무를 키워 보려고 시도했지만, 기후 문제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향백나무는 현재 레바논의 국기에 들어가 있어서 찬란했던 옛 영광을 떠올릴 뿐이다. 그리고 향백나무의 상징성에 대한 구약시대의 전승은 신약시대에도 이어졌다. 중근동지방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찍이 그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며 향백나무를 나무들 중의 으뜸이라 여긴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향백나무에서 아름다움과 위엄을 보았다. 그러기에 이 나무를 가장 아름다우시고 위엄 있으신 분, 곧 왕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로 받아들였다. 나아가 에제키엘 예언자가 그러했듯이, 구세주와 그분의 왕국을 상징하는 나무로 이해했다.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에제 17,22)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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