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유에의 여정 -자유, 생명, 행복- 2013.1.23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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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1-23 | 조회수35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2013.1.23 연중 제2주간 수요일 히브7,1-3.15-17 마르3,1-6
-자유, 생명, 행복-
자유를 찾는 사람입니다. 자유로워 사람입니다.
본능적으로 자유를 찾는 인간임을 입증합니다. 넓은 하늘이 흡사 하느님의 ‘자유의 창’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자유의 창’ 하늘을 보며 하느님의 자유를 호흡할 때 역시 자유의 체험이자 하느님 체험임을 깨닫습니다.
넉넉한 공간과 시간을 원하는 것 역시 자유를 찾는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넉넉한 공간과 시간의 자유는 바로 생명이요 행복과 직결됨을 봅니다.
내적 자유 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진정 자유로워 행복한 활력 넘치는 삶을 사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갈수록 내적으로 자유로워지는 삶이어야 합니다. 무용가 이 애주 씨의 자유에 대한 소견입니다.
자연은 '스스로 자(自)'에 연유할 연 아닌가. '스스로 그러한(然)' 것을 그대로 허용할 때 그것이 자유다. 자유는 생명이고 자유를 하는 사람은 자유인이다. …내가 60년간 추어왔던 우리 춤에 자유의 몸짓이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몸짓은 온몸을 써서 육체와 정신이 자유로워지는 해방의 몸짓이라는 사실이다. …자유의 몸짓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자유인이다.-
자유는 그대로 생명과 행복에 직결됨을 봅니다.
그러나 하느님 빠진 자유는 불완전하며 방향도 목적도 없습니다. 결코 자유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것과 참 자유를 찾는 것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참 자유를 찾을 때 그대로 자유의 원천이 하느님께 이르게 되고 자유로워집니다.
이런 자유는 섬김의 사랑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통한 자유로움이요 자연스러움이기에 이런 자유인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손이 자유로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치유활동을 시작하시며 적대자들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남을 해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너무나 자유롭고 자연스런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시며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 합니다.
자유롭지 못함을 뜻합니다. 적대자들의 완고함의 한계에 대한 예수님의 좌절과 슬픔이었음을 봅니다.
예수님의 자유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치유하여 자유롭게 함으로 사랑의 열매로 끝맺음을 봅니다.
부활하여 대사제로 현존하시는 대자유인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생애의 시작도 끝도 없는 이로서 하느님의 아들을 닮아 언제까지나 사제로 남아있습니다.’
무엇에도 매이거나 걸림이 없는 대자유인 예수님께 대한 묘사 같습니다.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고 당신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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