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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
이미경
작성일
2013-02-06
조회수
861
추천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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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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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3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They said, “Where did this man get all this?
What kind of wisdom has been given him?
What mighty deeds are wrought by his hands!
Is he not the carpenter, the son of Mary,
and the brother of James and Joseph and Judas and Simon?
And are not his sisters here with us?”
And they took offense at him.
(Mk.6,2-3)
제1독서 히브 12,4-7.11-15
형제 여러분, 4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1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15 여러분은 아무도 하느님의 은총을 놓쳐 버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또 쓴 열매를 맺는 뿌리가 하나라도 솟아나 혼란을 일으켜 그것 때문에 많은 사람이 더럽혀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복음 마르 6,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2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3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르치셨다.
거의 10년 전의 일이네요. 강화도의 갑곶성지에서 사목을 할 때, 자전거 사고가 나서 양 팔에 깁스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글쎄 자전거를 타고 굴러서 양 팔목의 뼈가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했거든요. 그래서 거의 두 달을 깁스를 하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정말로 화가 났습니다. 그때는 상황이 어려워서 제가 거의 모든 것을 해야 할 때였거든요.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으니, 심지어 양 팔의 부상으로 화장실에서 일보고 나오는 것도 저에게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화를 더 많이 내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상황에 대한 불평불만도 하느님께 정말로 많이 던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곶성지를 찾아온 어떤 형제님을 만나면서 제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지요.
이 형제님께서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오랫동안 휠체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좋은 물리치료사를 만나서 드디어 목발로 걸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발을 통해서라도 조금씩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하느님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저의 팔 부상이 낫지 않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몇 달의 시간만 고생하면 다시 옛날처럼 정상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불편함만을 강조하면서 불평불만을 터트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목발을 통해서라도 조금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사람들도 세상에는 많습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요? 우리는 행복을 자신의 상황에서만 찾으려고 합니다. 즉, 뭔가를 이뤄내고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상황은 상황일 뿐입니다. 상황 그 자체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얼마나 커다란 은총입니까? 많은 동네에서 놀라운 기적과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시는 예수님.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자기 마을에 오신 것입니다.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벌여도 부족해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과 은총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할 뿐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판단으로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신만을 간직하여, 구원의 큰 기쁨을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행복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긍정적인 마음, 사랑의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의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그 상황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참다운 사랑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발견해 새로운 빛을 더해 준다(키르케고르).
피정을 하는 주 장소인 신학교 대성당.
가장 행복한 순간?
티베트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청중 한 명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종종 행복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행복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궁금한 것은,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내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사제가 되었을 때? 어렸을 때의 추억? 가족과 즐거운 순간들? 과연 어느 순간이 가장 행복했을까요?
달라이 라마는 이 질문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한 뒤에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없습니다.”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그는 곧바로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서 했습니다.
“너무 많은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그래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는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말. 정답일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 그 모든 순간이 행복한 순간들이었고, 그래서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순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늘 최고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찾기 위해 지금 행복할 수 있는 순간을 놓치는 것은 아닐까요?
너무 많은 행복한 순간들 모두를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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