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래,
하느님 나라는 절대자이신 하느님의
마지막 계획이며 창조의 끝이고,
인간의 미래요,
그의 수많은 의문에 대한
응답이며 모든 신비의 계시입니다.
그 나라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즉 하늘과 땅은 그 나라의 실체가 성장하는
가시적, 불가시적 공간이요,
하느님과 인간은
그 나라의 실현자들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마음 한 가운데 있으며,
인간의 양심 한 가운데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보잘것 없는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한 껏 이해될 수 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
배부른 사람들,
향락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신비로울 뿐,
추구의 대상이 되지는 못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포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루가 4,18 이사61,1-2)
비록 그 나라의 실현이 운명적이고,
그 나라를 멈춰 세울 수 있는 힘을 없을지라도,
그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져 있는 교만한 마음은
그 나라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 나라와
부딧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모든 사람이
가는 길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부딪치게 하는 것은 언제나
교만한 마음이 만나게 되는 우상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한다고 하며 힐책합니다.
(시편 113,5-7참조)
하느님만이 계십니다!
이분이 하느님 나라의 주춧돌입니다.
그 무엇도 하느님 나라의 계획과 완성을
빗나가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무엇도 하느님의 뜻을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은 기껏해야 그 밖에서
서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밖에서 서성이는 것이
지옥의 연속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생각을 바꾸어
합당하게 거기에 들어갈 수 있기를
요청하기 위해 고독의 고뇌를
참아 내는 것으로 족합니다.
당신의 생각을 바꾸고
당신의 시야를 맑게 하도록 이끌어 주는
덕행은 겸손입니다.
그리고 생활의 모든 고통과
죽음의 계속적인 게시가 당신에게
그 덕행을 훌륭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