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마태 9, 14-15)
사람에게 사랑의 마음을 주시어, 가진 것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단식을 하고 희생을 나누는 삶을 살게 하시고, 그 모든 것을
사람의 공로로 받아주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전에 어느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30일간 물만 마시며
단식을 하신 적이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40일 단식은 예수님만 하시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사순절이 되면 매일 한 끼씩 단식을 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다 하지 않으니까 어느 때는 속이 쓰리고,
어느 때는 힘이 없어 미사 때 목소리가 약하게 나가기도 합니다.
교회법으로는 1년에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단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또 고해성사나 미사참례에 대한 의무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최소한으로 정한 것이지 그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전통적으로 열심한 유다인들은 한주에 두 번 정도 단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성모님께서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런 전통과 또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사려됩니다.
실제로 아프리카나 가난한 국가에서 1년에 천여만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은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비참한 일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식을 하거나 너무
먹어서 비만으로 걱정을 한다면 주님께서 보시기에 가슴 아픈 일일 것입니다.
내 마음 안에 굶주리는 이들의 고통을 측은히 여기고,
그들의 아픔을 나눌 마음을 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눈을 찔끔 감고 이내 그 마음 안에 머물지 않고,
생각지 않는다면 이내 그 거룩한 마음은 사라지게 됩니다.
지난 1월에 해외원조주일이나 기타 비슷한 주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영혼이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오히려 눈을 찔끔 감고 만원 혹은 몇 만원을 봉헌 할 수 있다면
주님의 은총이 내 안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단식에 대한 논쟁이 나옵니다.
먼저 “나는 단식하고 있는가?” 자문하고, 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내 안에서는 어느 정도 발동되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는 것이다.’ 라고 주님의 말씀을 제1독서에서 전하십니다.
사순절기간 동안 사순절 헌금통에 사랑의 헌금이 차곡차곡 쌓이고,
내 안에 숨겨진 측은지심도 더욱 크게 성장되어
절제와 희생이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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