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루카 5, 27-32)
일상적인 삶 안에서 우리의 마음에 좋은 뜻을 일으키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일반대학을 다니던 시절 늦가을 어느 날인가 밤에
비를 맞으며 집으로 오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침 길에 한 사람이 술에 취한 듯 누워서 비를 다 맞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러다 심장마비로 죽을 수도 있는데, 하며
걱정을 하였지만 길을 그냥 걸어갔습니다.
5m, 10m 지나면서 자꾸 등 뒤에서 예수님께서 잡아당기는 것 같아 뒤로
돌아서 그 분에게 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저는 집에 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예수님 죄송합니다.
오늘 길에서 잠들어계신 당신을 모른 척 그냥 지나쳤습니다.”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대략 보름 뒤 저녁에 어느 할머니가 집에 가고 싶은데
눈이 어두워 집을 못 찾아 간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려 하다가, 지난 번 일이
생각나서 마음을 바로 바꾸고 할머니의 눈이 되어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날도 낮에 비가 내려 길은 질척했고 미끄러웠습니다.
할머니는 인근 시골에서 목장 집에 살고 계셨습니다.
황토길에 미끄러워 넘어지실까 염려되어 업어드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려는데 할머니께서 들어와 차라도 마시고 가라하셨습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하였는데 손녀딸도 있으니
꼭 차 한 잔만 마시고 가라 하셨습니다.
만일 그 때 제가 그 할머니 말씀대로 그 집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면
저는 지금쯤 신부가 아니라 신랑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나왔습니다.
그 할머니의 청을 마다하고 친구에게 달려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발은 진흙이 묻어 질척질척하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신학교에 가려 고민하고 있었는데,
무엇이 부르심(성소)인지 몰라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두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좋은 뜻을 마음에 일으키는 것이
주님의 부르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전에는 저의 마음 안에 사제직에 대한 열망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르심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계학을 그만두고 회개하여 신학교에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일상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께
귀를 기울이면 언제나 들을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끝난 것도 아니고, 사제가 되었다고 끝난 것도 아닙니다.
본당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일상 삶 안에서 매일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를 따라라.” 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그분을 따른 레위처럼 저희도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 라고 응답하며
주님을 따르는 축복의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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