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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전례 탐구 생활1: 전례의 핵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4 조회수6,229 추천수0

전례 탐구 생활 (1) 전례의 핵심

 

 

제가 신학생이었을 때 누가 자신을 소개하며 세례명을 토마스라고 했더니 제 옆에 있던 어느 교우가 되물었습니다. “토마스 모어요, 아니면 토마스 아퀴나스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16세기 영국의 대법관이자 『유토피아』의 작가 토마스 모어가 성인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때 제가 모른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느라 잠시 먼 산을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1년쯤 지났을 때 어느 신부님이 제게 고해성사를 보러 왔습니다. 성사를 다 마치고 영대를 벗는데 그 신부님이 제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사죄경 외울 때 왜 오른손을 제 머리 위로 안 펴 드셨어요?”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그때서야 ‘사제는 고해자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얹거나 오른손을 펴 들고 사죄경을 외운다’는 규정이 아주 어렴풋하게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도 적당히 둘러대느라 등줄기에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로마에서 3년 동안 전례를 공부하고 돌아온 지금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어제까지 몰랐던 것 오늘 새로 알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고, 오늘 잘못 알고 있는 것 내일이라도 제대로 알려고 고군분투합니다. 그것은 제가 기본이 약한 사람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교회의 전례 자체가 엄청난 전통의 보물창고이기 때문입니다. 캐고 캐도 뭔가 나오고 꺼내고 꺼내도 속이 비지 않습니다. 온 세상에 퍼진 교회 공동체가 지난 2천 년 동안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중단 없이 기념해 오고 있으니, 그 활동이 남긴 유산이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지 감히 다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전례는 식순에 따라 진행되는 공식 행사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전례를 거행한다는 것은 교회가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바탕으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지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기념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풀어쓰면 이렇습니다. “전례는 한 사람이나 한 그룹이 아니라 온 교회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펼치는 활동이다, 좋은 것이면 아무거나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교회의 전통을 따른다, 신비라고 해서 우리의 머리와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괴상한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과 감각에 직접 와닿는 말, 동작, 물건들을 사용한다, 거행의 종류에 따라 그 핵심 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를 기념한다는 것은 다 지나버려서 현재 없는 사람의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전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마주 대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의 제사를 올려 드리는 예수님 곁에서 우리도 거룩해지는 사건이다.”

 

이것이 모든 전례 거행의 요체이고 전례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잊지 말아야 할 정신입니다. 토마스 모어가 성인인 것도, 사죄경을 외울 때 고해자에게 오른손을 뻗으라는 규정도 전례의 이 핵심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을 바라며 숙이는 고개나 십자가의 길을 바치는 발걸음에서도, 성무일도를 낭송하는 목소리나 성체를 받아 모시려 내미는 손에서도 우리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전례는 복잡합니다. 그러나 이 복잡함이 가리키는 방향은 이렇듯 단순합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이 복잡함을 저 단순함에 비춰 풀이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전례의 여러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는지, 혹은 그 신비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려면 전례 예절이 어떻게 질서 잡혀야 하는지 탐구해 나가려 합니다. 잘 짜인 체계 없이 제가 공부한 내용을 먼저 전해 드리게 될 것이라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2019년 12월 8일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 · 사회 교리 주간)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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