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하느님을 첫 자리에(마르 12, 28-34)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라고 대답하십니다.
우리는 십계명 중에서 1-3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계명이고,
4-10까지 계명은 이웃 사랑의 계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목숨을 다해서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해야하지만
재물이나 세속의 취미나 쾌락을 더 좋아하고,
하느님의 이름은 많이 부르지만 믿음 없이 헛되이 많이 부르고,
주일을 거룩히 지내야 하지만, 주님의 날이라는 개념은
거의 없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주일 미사는 짧아야하고,
성체 앞에 머물기 보다는 놀러 가거나 개인 일 하는 날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거의 자유롭지 못한 것 같고,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명은 낙태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대단히 많고,
누구든지 예상치 않은 상황이 오면 감행하려 하고 있는 듯합니다.
또 죽이지는 않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는
쉽게 마음에서 지워버립니다.
혼전 순결은 옛 계명이나 관습이 되어, 성 자유주의 문화 속에 휩쓸려 살아갑니다.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계명에서도
우리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면서도
이를 합리화 시켜서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는 계명 역시 지키기 힘듭니다.
불륜도 문화처럼 번지고,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며 지냅니다.
또 우리는 경제지상주의 속에서 무한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십계명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통회를 할 때
우리의 영혼은 다시금 영적으로 회복되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통회하지 않고 그런 모든 것을 계속 덮어 놓고 산다면 영적인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자신이 대죄 중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한 삶이 지속되다 양심조명이 이루어져 자신의
모든 잘못을 바라보게 되면 대단한 충격에 쌓이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주님, 지금까지 하느님을 목숨을 바쳐 사랑하지 못한 죄와,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지 못한 죄를 통회하고,
언제나 하느님을 첫 자리에 놓고 살아갈 수 있는 은총 내려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