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월9일(토) 聖 전장운, 聖 최형 님 순교하신 날 | ||||||||||||||||||||||||||||||||||||||||||||||||||||
---|---|---|---|---|---|---|---|---|---|---|---|---|---|---|---|---|---|---|---|---|---|---|---|---|---|---|---|---|---|---|---|---|---|---|---|---|---|---|---|---|---|---|---|---|---|---|---|---|---|---|---|---|---|
작성자정유경 | 작성일2013-03-08 | 조회수33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전장운 요한님은 서울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한 달 동안 옥살이를 하시다가
혹형과 고문을 참지 못하여 배교하고 석방되셨다.
그 뒤 어머니의 권면으로 배교한 것을 뉘우쳤지만,
사제가 없어 고해성사를 받을 수 없음을 한탄하였다.
1845년 김대건 신부님이 입국하자 고해성사를 받고
열심한 신앙 생활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였고 혼인하여 3남매를 두셨다.
1866년 초 장 주교의 명으로 교회 서적 출판에 참여하여
최형, 임치화님을 도와 판각(板刻)을 마련하는 일을 맡았으나,
얼마 뒤 병인박해가 일어나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고
교회 서적들이 적발되는 바람에
전장운님도 3월 1일에 체포되셨다.
포청과 의금부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은 뒤
3월 6일에 형조로 이송되었고, 3월 9일에 사형을 선고받아 그 날로
최형 베드로님과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5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셨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발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