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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심리학적인 사랑의 파괴와 회개하는 겸손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08 조회수457 추천수0 반대(0) 신고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그래서 나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찍어 넘어뜨리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로 그들을 죽여, 나의 심판이 빛처럼 솟아오르게 하였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호세아  6,1 - 6>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 같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루카 18, 9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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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심리학으로 '하느님의 신앙'을 그 잣대로 판단내리지 못합니다. 한 사람의 삶의 시간 속에는 '세상'만이 있지 아니하고 세상 너머의 '하늘'도 있기 마련입니다.사람의 무수한 시간들 속에는 세상의 지혜(심리학적 관점)만으로 단정하기는 벅차다는 뜻입니다.

게시글 '잠을 이루지 못하다'의 글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관점에서 작성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글 속에는 세상의 차원만이 전부가 아닌 하늘의 차원도 동시에 있다 할 것입니다. 자칫 세상의 심리학으로 오히려 '예수님의 반대자'가 되어지기도 합니다.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과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의 심리학적인 논리에만 빠지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인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간과함으로써 인간 태초의 유혹에서 처럼 인간은 사랑을 파괴하고만 말게 되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태초의 인간도 '하느님의 숨'으로 창조되었습니다.[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창세기 2, 7 참조)] 며 기록합니다. 사람은 <사랑의 모상>인 것입니다.

사람이 생명체가 되어짐은 '생명의 숨' 곧, '생명의 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불어넣어질 때에 진정한 생명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 이 사랑의 모상이 태초의 사람 본래의 참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숨'은 바로 '사랑의 숨'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생명의 숨을 쉴 때가 사람의 참된 모습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인간의 원죄' 이후, 인간은 예수님께서 오시기 까지는 '육에서 난 사랑'(카인과 아벨) 곧,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에서 오는 이 사랑은, <'영에서 난 사랑'인 하느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 속에 다시 '하느님의 생명'으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이십니다.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예수님은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 사람에게 들어 온 것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사람 안에 '예수님의 사랑'(사랑에서 나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에서 나신 사랑'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시며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즉,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과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의 심리학적인 논리에만 빠지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사랑인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간과함으로써 인간 태초의 유혹에서 처럼 인간은 사랑을 파괴하고만 맙니다.인간은 하느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을 파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에게서 오는 사랑이 아니므로 세상의 심리학적인 논리에 입각해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세상의 차원과 하늘의 차원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에서 영적으로 일탈 할 정도의 영적인 나태에 결박되면 회개하지도 못하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결국 예수님의 사랑을 파괴하게 된다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님께 안기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 앞에 회개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자신을 높이기 위해 심리학적인 관점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파괴하는 사람은 회개할 기회마저도 상실해 버리는 불행 (예수님의 반대자, 사랑의 반대자) 을 가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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