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1년 8월 프랑스의 뮤(Meux)에서 태어난 성녀 루도비카(Ludovica)는
아기 때에 어머니를 잃었으나
수녀들의 도움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윽고 그녀는 안토니우스 레 그라(Antonius Le Gras) 백작과 결혼하여
12년 동안 행복한 생활을 한 후 남편과 사별하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에게 뜻하지 않게도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로부터
영적지도를 받는 계기가 생기면서부터 일대 전환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그녀는 잘 알고 있던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ius a Paulus, 9월 27일)를 찾았다.
그 당시에 성인은 ‘애덕회’를 조직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빈첸시오 성인은 성녀 루도비카의 소망을 받아들여
‘애덕의 수녀회’를 설립하여 초대원장으로 루도비카를 임명하였다.
이 수녀회가
오늘날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라고 불리는 수녀회이다.
그때부터 그들의 수도원은 병원이요 성당은 교구의 모든 성당이며
봉쇄 구역은 길거리가 되었다.
회칙 초안도 그녀가 작성하였다.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관대한 사랑은
이 수녀회의 급속한 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1660년 3월 15일 성녀 루도비카가 파리에서 임종할 때
프랑스 내에는 이미 40개의 수도원이 있었고,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돕는 구호소는 수없이 많았다.
그녀는 이런 말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봉사하라.
…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부끄럽게 하지 말 것이다.
그대가 섬기는 이는 곧 그리스도이시니…”
그녀는 1920년 5월 9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4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60년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사회복지사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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