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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중간 연결고리인 무덤에 묻힘의 영성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3-03-30 조회수45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무덤 속에 계시는 시간들입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으심을 겪고 무덤 속에 내려가 있는 시간들입니다. 단순히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들의 마침이라 할 수 없습니다.

강생에서부터 - 삶을 거쳐 -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무덤 속으로 내려가 계시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묻혀있는 시간을 허비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 없이' 오늘 하루가 지나서 내일이 오면 '저절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그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반복일 뿐입니다.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어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관상하는 것은 '그리스도 없이' 다시 일어날 수는 없다는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묻히는 깊은 심연의 체험을 하고 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난다는 을 의미합니다. 내일이면 저절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들과는 다른 것입니다.

'무덤에 묻힘'의 관상은 다른 것입니다.누구나가 흔히 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자연적인 논리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영성적인 여러 의미들을 부여해 왔습니다. 

하지만 정작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영성들은 마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하고 말합니다. 죽으면 열매를 맺습니다. 그래서 죽어야 한다는 많은 영성들이 있는 것입니다.

'무덤에 묻힘'의 영성에서는, <죽는것과 맺는것> 사이의 그 연결고리인 '묻힘의 영성'을 의미합니다.예수님께서는 <죽으심과 부활함> 사이의 그 연결고리인 '무덤의 묻힘'의 시간을 겪고 있습니다.

죽어야 하고, 죽으면 저절로 부활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심연의 또 다른 체험에 계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의 무덤 속에 묻힌 사흘간 어둠의 시간들입니다. 십자가상에서 온갖 고통의 수난 가운데 숨을 거두시고 마친 것으로 전부는 아니다 하겠습니다.

죽으면 고통이 끝나는게 아닙니다. 죽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는게 아닌 것입니다.  무덤에 묻힌 '죽음의 시간(나라)'에서 예수님께서는 죄의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하시는 것입니다그리고 승리하십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무덤에 묻힘'의 어떤 예수님 체험을 우리는 관상하여야 합니다. 교리서의 가르침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직접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묻힘'의 체험을 해야만 <그리스도의 무덤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되는 것(부활의 삶)입니다.

그럴 수 있을 때, '살아있지만 실상은 죽어있다'가 아니라,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묵시 1,18) 하고 그리스도의 참된 부활 참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덤에 묻힘은 또 다른 고통의 심연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자신과 악과의 마지막 싸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무덤에 묻힘'의 죽음의 나라에서 악과 죄와 고통과 죽음에서 승리를 이루시고 인간을 악에서, 죄에서, 고통에서, 죽음에서 해방시키실 수 있었습니다.이와같이 진정한 싸움이 없이는 참된 부활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통에서 죽으면 단순히 부활이 주어진다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아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의 심연 속에서 내려갔다면, 이 죽음의 세력들과 마지막으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앞서서 내려가시어, 싸워서 죄악과 고통과 죽음을 쳐부수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시어 ㅡ 하늘로 올라 가신 분>이십니다. 내려가셨기 때문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깊이 뿌리내려진 곳까지 내려가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악의 고통과 죽음으로 깊이 뿌리내려진 것들을 없앨 수가 있었으며 부활하신 '영광의 특권'을 지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무덤에 묻힘'은 '나 홀로 수덕주의'가 아니다는 뜻입니다.  '나 홀로 수덕주의'는 무덤에 묻힘의 어두운 땅의 직접 체험 아니기에,  죄악과 고통과 죽음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결국 그 안에 갇히고 맙니다. 땅에 깊이 박혀내려진 죄악과 고통과 죽음의 곳, 뿌리에까지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악과 고통과 죽음은 무덤에 묻혀서도 싸워서 이겨야만 없앨 수 있습니다.그리스도께서 먼저 앞서서 그렇게 하시어, 최후 고통의 무덤 시간 속에서 일어나셨습니다.
승리의 부활이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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