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부활을!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서로 축하의 인사를 나누십시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가정에, 온 세상에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사랑의 승리요, 우리에게도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으면 우리의 가르침도 헛되고 믿음도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조건 없는 사랑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드러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스승을 잃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의 슬픔을 거두어 주었습니다. 온갖 조롱과 모욕을 받으면서도 한마디 변명도 없이 침묵하셨던 주님의 모습이 의로운 행위였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또한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 고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부활로 동안에 보여주었던 여러 표징들이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당신을 몸소 생명의 빵으로 소개하며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6,51)하고 영적인 양식으로 내어주셨는데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이 되게 하셨습니다. 죽음에 직면하여서도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23,34). 하고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신 간절함이 아버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그리고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하고 의탁한 기도가 열매 맺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한 십자가의 죽음이 파멸이 아니라 사랑의 승리였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또한 우리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당신 친히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39-40).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새 삶이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은 더없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여기서부터 부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에게 ‘부활이 왜 기쁘냐?’ 고 물었더니 ‘사순절이 끝나서 기쁘다’고 합니다. 동안에 여러 가지 결심을 하고 실천하기가 벅찼나 봅니다. 물론 부활이 죽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고와 땀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준비는 일회적이고 한시적으로 하고 말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마주하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이 끝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매 순간 ‘고통 없이 영광 없고, 죽음 없이 부활 없다.’는 진리를 생각하면서 썩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한 알의 밀알처럼 날마다 순간마다 희생을 바쳐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누리려면 먼저 ‘해묵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합니다. 인간적인 욕심과 교만, 시기질투, 이기심에 죽고 절제와 겸손, 온유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2,20) 하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부활을 살지 못하는데 어찌 훗날의 부활을 희망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보면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여자들이 무덤으로 갔는데 무덤의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부시게 차려입은 두 남자로부터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 나셨다.” 라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비었기 때문에 부활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이 비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무덤의 삶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둡고 침침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맑고 밝은 긍정적인 생각과 삶으로 나와야 합니다.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서 나와서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신 영원한 천상행복의 미래를 보고 오늘을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수난은 현세 생활의 수고와 고통과 죽음의 운명을 가리킵니다만, 주님의 부활과 그 영광은 우리가 받을 영원한 생명” (성 아우구스티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오늘 여기서부터 살 수 있는 은총을 받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부활의 기쁨이 넘쳐나길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