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원한 삶 - 2013.3.31 예수 부활 대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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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3-31 | 조회수39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3.3.31 예수 부활 대축일 사도10,34ㄱ.37ㄴ-43 콜로3,1-4 요한20,1-9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그대로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듯, 바로 지금 여기가 영원임을 깨닫습니다.
“꼭, 주간 첫날 이른 아침 무덤을 향해 달리던 베드로 같습니다.”
이어 집무실에 들어와 강론을 쓰니 참 행복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로부터 빈 무덤 이야기를 듣고 무덤을 향해 달려가던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생각이 났습니다. 오늘은 ‘영원한 삶’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영원한 삶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입니다. 빛이신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 또한 세상의 빛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제 밤 부활 성야 미사 전 빛의 예식을 하면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이 세상을, 우리 내면을 비추지 않는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주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의 반영입니다. 이토록 주님을 사랑해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납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무덤을 찾았던 마리아 막달레나 역시 베드로 보다 앞서 달렸던 주님의 애제자는 빈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 사랑의 눈이 열려 주님 부활을 직감한 애제자 요한입니다. 하여 우리 사부 성 베네딕도 역시
주님을 찬미할 때 영원한 삶입니다. 영원하신 주님 사랑에 대한 응답이 찬미와 감사의 삶입니다.
하느님은 나자렛 출신 예수님과 함께 계셨고 성령과 힘을 부어주시어 이어 하느님은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창조의 위업을 완성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의 화답송 후렴과 시편 첫 구절을 노래하며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을 좋으신 분, 찬송하여라.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알렐루야와 아멘은 영혼의 양 날개이자 우리 신앙을 요약합니다. 알렐루야, 하느님 찬미로 살다가, 아멘, 감사로 끝날 때 비로소 영원한 삶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하느님 사랑에 감사할 때 저절로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고 찬미와 감사는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깨닫습니다. 최고의 찬미가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혜민 스님의 ‘감사만이 꽃길입니다.’라는 칼럼 안에 인용된
-몇 번을 읽어도 새삼스런 감동을 주는 구절이 있다.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사는 첩경은 찬미와 감사의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할 때 영원한 삶입니다. 요즘 영혼을 좀먹는 위험한 사조가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입니다. 추구해야 할 영원한 가치도, 진리도 없습니다. 모두가 지상적인 것들을 찾아 몰두하기에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픈 삶입니다. 지상적인 것들을 추구하다 보면 영원히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허망한 삶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권고가 참 고맙고 적절합니다.
“형제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상의 것들을 무시하라는 게 아니라 천상을 것들을 기준으로 삼아 너무 지상의 것들에 중독되어 살다보니
베트남이 가난해도 행복지수는 세계2위요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를 통해 죽었고 그러니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바로 이게 우리의 영원한 참 희망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빛이자 생명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끊임없이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바로 이게 우리가 지금 여기서 영원한 삶을 사는 첩경의 지름길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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