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단락 성 부 --- 간추림
[261] 지극히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삶의 핵심적인 신비이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당신을 계시해 주심으로써 이 신비
를 깨닫게 해 주실 수 있다.
[262] 성자의 강생은, 하느님께서 영원한 성부이시며 성자와 성부가 한 본체이시라는
것, 곧 성자께서는 성부 안에서 성부와 더불어 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계시해 준다.
[263] 성자의 이름으로 성부께서 보내 주시며, 성자께서 “아버지에게서”(요한 15,26)
보내 주시는 성령의 파견은,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한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나이다.”
[264] “성령께서는 첫 근원이신 성부에게서, 그리고 성부께서 성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증여를 통하여, 친교를 이루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
[265]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받는 세례의 은총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불완전한 신앙 안에서 그리고 죽음을 넘어 영원한 빛 안에서, 복되신 삼위의 생
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266] “가톨릭 신앙은 이러하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삼위로, 삼위를 한 분의 하느님으로
흠숭하되 각 위격을 혼동하지 않으며, 그 실체를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성부의 위격이
다르고 성자의 위격이 다르고 성령의 위격이 다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천
주성은 하나이고, 그 영광은 동일하고, 그 위엄은 다 같이 영원하다.”
[267] 그 실체가 분리될 수 없는 하느님의 세 위격은 하시는 일에서도 분리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단일한 활동에서, 특히 성자의 강생과 성령의 강림이라는 신적 파견에
서 각 위격은 삼위 안에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드러낸다.
< 오늘의 묵상 >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 할때 성령의 은총을 받지 않고서 하는 고백은 의미가
없는것 처럼 ,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랑으로 성삼위가
하나됨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필리포스로 인하여 에티오피아 내시가 예수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지 않으시면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슴을 우리의 신앙을 통해 확인
합니다.
넘어지고 일어나는 연습의 반복을 통해 한걸음씩 주님께 다가간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데..
그렇다면 사랑은 또 무엇일까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리를 주님께 한걸음씩 다가가게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선(線) 밖의 이웃을 만납니다.
그러나 무턱대고 선을 나가면 이웃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신중과 신중을 기해야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웃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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