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소나무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4/26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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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신미숙 | 작성일2013-04-26 | 조회수400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4월26일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복음묵상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14,6) ---- 이 말씀을 좁은 의미로만 해석하지 말자.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넓은 의미로 그 진실을 이해하도록 하자. 여기서 좁은 의미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라는 말씀을 예수라는 이름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해석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러한 좁은 의미의 해석은 인류 역사가 만든 비극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을 반성하고 늘 상기해야만 한다. 넓은 의미의 해석이라면 무엇을 말하는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즉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하여 성사에도 참여하지 않지만, 삶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일치하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아름다운 마음과 삶으로 향기를 내고 있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많다. 중요한 것은 삶이다. 알면서도 옳게 살지 못하는 이들과, 모르지만 옳게 사는 이들 중 누가 더 그리스도를 닮았는가 하는 질문은 우문이 될 것이다. 물론,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한다면 보다 복음적으로 살기 유리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은총도 헤아릴 수 없음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하지만, 그러한 은총 가운데 살면서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만 한다. 제대로 살지 못할 때, 부담은 배가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 구원의 보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만 한다. 사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아름답고 훌륭하게 살았던 이들은 무수하리라.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도 예수라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지만 아름답게 살다가 간 영혼들도 셀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갖지 않고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가는 이들은 수없이 많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런 아름다운 삶을 사는 이들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더 멋진 세상이 될 수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그 중 제 네 번째 이야기로 소개된 뇌병변 1급 장애의 부부의 사는 모습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아름다움에 왜 이리 한없이 부끄러운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거실에서 현관까지 오는데도 몇 번을 굴러야 도달할 수 있는 사지 모두 불편한 남편, 왼손 하나만을 겨우 사용할 수 있는 아내, 이들이 서로 도우며 20년의 부부생활을 하고 있다. 둘 사이에 생겨난 아이를 낳자마자 외국으로 입양을 보내야만 했던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부부. 하지만 두 부부의 얼굴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가 멈추지를 않는다. 아내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남편은 불편한 몸으로 어느 산악회에 편지를 쓰기 위해 한 자 한 자 버겁게 자판을 누른다. “웃는 얼굴이 예쁜 제 아내입니다.. 이 아내를 산 정상까지 올라가게 해줄 수 있겠습니까?” 며칠 후 산악회 회원들이 집으로 찾아왔고, 정말 힘들게 산 정상에 오른다. 난생 처음 보는 정상에서의 풍경에 두 부부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부끄러움 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이 아름다운 마음을 누구보다 대견하고 기특하게 보실 이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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