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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 오소서, 성령이시어![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작성자박명옥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4 조회수623 추천수0 반대(0) 신고
                                                           
 
 
 
 

 
 

         배티 성지 김웅열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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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저는 피정을 다니기 때문에 다른 신부님들보다는

개신교신자들을 많이 만나는 편입니다.

면담을 할 때도 있고, 개신교 목사들이 상담을 하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참 뜨겁고 열렬하다!’

평화방송에 나오는 제 강의를 듣고 개신교 신자가 십일조를 준비해서

‘신부님, 꼭 필요한데 쓰십시오!’


저는 그전에 성당을 여러 개 지으면서 의외로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개신교신자 분들이 어려운 가운데도 봉헌을 많이 했어요.


천주교의 깊은 뿌리와 개신교의 그 열렬함이 합쳐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2000년 묵은 천주교의 뿌리와 개신교의 그 열렬함!

이 두 개가 딱 합쳐지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교회가 될 텐데...


아마 진천성당 신자들은 미국에서의 안정된 모든 삶을 포기하고

‘신부님 옆에서 아이들 신앙의 뿌리를 가르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한국말 가르치고, 신앙교육을 철저하게 시키면서

아름답게 살다가 미국으로 되돌아간 부부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 부부는 천주교의 뿌리와 개신교의 뜨거움이 만나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미국에서는 개신교와 천주교가 연합으로 성령기도회를 자주합니다.

의대생과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두 사람이

그 기도회에서 만나 결혼을 했지요.


남편이 의사고 또 아내도 특수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저는 미국 피정 갔을 때, 아이가 여섯이라는 그 말 자체에 놀랐었어요.

남편은 몇 대째 내려오는 천주교 구교우집!

그 부인은 집안에 목사님들이 몇 명씩 있는 개신교신자!

뿌리와 뜨거움이 만나니까 기가 막힌 성가정이 되더라~

개신교 출신의 부인이 뿌리는 있지만 추진력이 없는 남편을

끌고 하느님 앞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나갑니다.


오늘 예수님이

‘내가 떠나더라도 나를 대신해서 협조자이신 진리의 성령을 보내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볼 수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지만 너희들은 알 것이다.’


천주교 이천년 역사 안에는 협조자 성령이 지켜주셨습니다.

오백년 역사의 개신교 안에도 분명히 성령이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협조자이신 성령께서 한가정도 지키고, 내 영혼도 지키고

우리 구역도 지키고, 우리 본당도 지키고, 지역교회도 지키고

전 세계 교회를 지켜주시기 때문에 가톨릭이 이천년 동안 내려온 거예요.


교회라고 하는 것이 인간이 만든 집단이라고 한다면

그 주동자 몇 사람만 잡아 죽이면 그 단체는 공중분해가 됩니다.

이천년 동안 천주교 씨를 말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박해가 있었습니까?

그러나 천주교 없어졌습니까?

성령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없어지지 않고 내려온 겁니다.


성령이 하신 가장 큰일은 첫 번째, 성직자와 수도자를 지켰습니다.


누가 물어요.

“신부님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신부님 되실 겁니까?”

‘이 어려운 걸 왜 내가 또 살아, 절대로 다시 신부생활 안한다.’

수많은 고비가 있었어요.

‘신부된 지 23년, 고비고비 마다 어떻게 넘어서 여기까지 왔을까?’

이것이 내 힘은 아니다.

그럼 누구의 힘?

‘성령의 힘’

이천년 동안 성령이 하신 가장 큰 일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지킨 겁니다.


저는 신부님, 수녀님들 피정을 합니다.

신부님 수녀님들 피정을 받으러 올 때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혼자서 해결 하려하려 하다가 옷 벗기 직전에 찾아와요.

피정을 하러 들어오는 신부님, 수녀님 얼굴을 보면

아주 얼굴이 말이 아니에요.

본당에서 수녀생활하면서 받은 상처!

신부님이랑 살면서 서로 주고받은 상처!

인간끼리 주고받은 상처가 얼마나 컸겠어요.

면담하면서 통곡을 하는 수녀님 신부님들도 있어요.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떻게 신부 생활하겠습니까?

이렇게 힘들어서야 어떻게 수도 생활하겠습니까?

차라리 환속하겠습니다.


면담하고, 기도하면서 어떨 때는 같이 울죠.

성령께 도움을 청하면서 다시 성사보고, 회개하고, 피정 끝나고 나갈 때는

‘신부님, 성소 잃지 않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것이 피정 지도 신부를 통해서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성령이 안계셨다면 성직자수도자들은 다 망가졌을 거예요.

성직자 수도자들이 어려울 때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면서

많은 내적 쇄신을 갖게 됩니다.

성무를 집행할 때도 직업적으로 집행 하는 것이 아니라

미사를 드릴 때도 정성을 다해서 드리게 되고

성령이 함께 계실 때는 고백성사를 줄때도

‘치유 자’ 로서 고백소에서 성무집행을 합니다.

성령이 함께하실 때는 기도하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성무일도를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죠.

사제가 직업이라면 이렇게 힘든 직업, 택하지 않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을 지켜주시고 쇄신시켜주셨는지~

아마 이것이 성령이 우리 교회에서 하신 가장 큰 일이 아닌가?


두 번째로 성령은 평신도들을 지켰습니다.

평신도들 가운데서 성령의 뜨거운 체험을 한 사람이

어느 단체나 그 단체의 장을 맡아서 일을 하면 그 단체는 살아나요.


레지오 단원, ME, 꾸르실료.... 같은 단체도 성령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맨 날 모여서 놀고, 노래방 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래서 우리 평신도를 영성적으로 깊이 있게 끌어가는 것이

바로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성령에 대한 체험을 한 사람은 교회의 어느 분야에 들어가던지

하느님의 일을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자신의 능력, 자신의 지식을 가지고 하려고 하면

늘 상처받고 자빠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특별히 봉사자로 불림을 받은 사람들은

성령께 늘 도움을 청해야합니다.

또 아버지로써 성가정을 이끌어 가야할 가장이라면

역시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합니다.


성령이 하신 일 두 번째는 평신도들 삶 가운데 깊숙이 개입해서

흔들리는 우리들을 늘 잡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잡아주시지 않는다면 이 험한 세상에

이 환난의 시대에 얼마나 많은 가정이 깨어졌겠습니까?

자식들이 무사히 학교 갔다 돌아오는 것도 성령께서 지켜주신 것입니다.

내가 내 자식의 생명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부모들은 특별히 성령께 늘 자식을 봉헌해야합니다.


내가 직접 내 자식 곁에 있지 못합니다.

성령께서 내 아들 내 딸, 유학 가 있는 내 자식, 세속에 물들지 않고

죄 중에 헤매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객지에 가있는 내 새끼 성령께서 좀 살려주십시오.

이 험악한 세상, 하느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성령께서는 가톨릭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딱딱하고 굳어져버린 가톨릭 안에도 성령이 역사하셔서

우리 신자들을 하나로 이끌고 있습니다.


네 번째,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싶게끔 역사하셨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많은 사람들은 성서 펴서 읽고 묵상합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가까이 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다섯 번째,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도생활에 충실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을 체험한 사람들은 자꾸자꾸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기도가 지겨웠던 사람도 기도가 즐거워집니다.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한 시간을 성체조배해도 5분보다 짧게 여겨집니다.

그분 안에 잠기기 때문에 그렇죠.

기도 한 번 하지 않던 인간들이 성령을 알면 성당 쪽으로 향하고

정기적으로 성당에 와서 하느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여섯 번째, 성령께서는 우리를 미움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십니다.

과거 깊숙이 묻혀있는 미움의 상처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 깊숙이 삐뚤어진 인간관계가 상처에서 시작이 됩니다.

부부관계, 자녀문제, 고부간의 갈등, 금전관계 등 이런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되고 용서하는 계기가 됩니다.

정말 힘들었던 인간관계가 성령을 체험한 후에는 쉽게 풀리기 시작합니다.

그전에는 그 자존심 하나 붙들고 끙끙대던 것이

이제는 쉽게 누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를 청하게 됩니다.

이렇게 쉬운 걸 그게 뭔데 내가 그걸 붙들고 힘들게 살았는가?


가톨릭의 모든 기도문의 시작은 성령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가톨릭의 모든 기도문의 결론도 성령의 열매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성령을 찾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를 그을 때마다 성령을 찾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볼 수 없지만

성령이 나와 내 가족 안에 역사하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하느님을 찾는 아이들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당당하고 씩씩하게 군대생활 잘 하다 나오지만

집에서 떠받들던 아이들은 군대 가서 잘 참지 못합니다.

수틀리면 총 들고, 탈영하고, 쏴죽이고 못 참습니다.


성령께서 여기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주시고

내 쪽에서 성령께 좋은 본을 보여드린 적은 없어도

지켜주신 것 감사드립시다. 아멘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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