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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벨레스의 성녀 이다(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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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다는 복자 페핀(Pepin, 2월 21일)의 아내로
남편이 사망한 후 프랑스의 니벨레스에 수도원을 세우고
그녀의 딸인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 3월 17일)와 함께 들어갔다.
그 수도원은 베네딕토회의 규칙을 따랐고
성녀 제르트루다가 원장직을 맡았다.
그녀는 이타(Itta) 또는 이두베르가(Iduberga)로도 알려져 있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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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페핀의 아내로서
남편이 죽은 후 수도원을 설립하고
땰인 성녀 제르트루다와 함께 입소하여 성가정을 이룬
성녀 이타 님이시여
삶을 아름답게 정리한
님을 기억하는 오늘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축복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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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데시데라투스(데시데라토)는
프랑스 수아송(Soissons)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양친은 신심이 깊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에 열성이었고
또 자기들의 집을 병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성 데시데라투스는 국왕 클로테르(Clotaire)의 궁으로 들어가서 외무대신이 되었는데,
그의 건전한 사고방식은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고 이단을 축출하였으며
또 성직 매매자들에게는 자신의 큰 권리를 사용하였다.
그는 누차 수도원으로 은퇴하기를 희망하였지만 번번이 왕으로부터 거절당하였다.
왕은 그를 보고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복지를 먼저 생각하라고 일렀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541년에 성 아르카디우스(Arcadius)가 서거하자
성 데시데라투스는 부르주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주교 재임 9년 동안
그는 평화의 수호자 혹은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높은 칭송을 받았다.
이 거룩한 주교는 여러 시노드(Synod)에 참석했는데,
특히 네스토리우스 이단과 에우티케스(Eutyches) 이단을 단죄했던
제5차 오를레앙(Orleans) 공의회와 제2차 오베르뉴(Auvergne) 공의회에
참석하여 큰 기여를 하였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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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선한 삶을 보면서 성장하여
곳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성직자가 된 후로는
평화와 기적의 주교로 칭송받았던
성 데시라토 님이시여,
오늘 저희가 님을 기억하오니
어려운 이웃과 하나가 되는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천상의 기도로 저희를 이끌어 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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