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독수리'라는 뜻을 지닌 성 파코미우스(또는 파코미오)는
290년경 북이집트 에스네(Esneh)에서 이교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나 성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310년경 군대에 징집되어 이곳저곳에서
복무하던 중 라토폴리스(Latopolis)에 살던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적인 자선활동에
매력을 느껴 1년간 군복무를 한 후 셰네시트(Shenesit)로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좀 더 완전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은수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은수자 성 팔레몬(Palaemon, 1월 11일)을 찾아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
성 파코미우스는 몇 년 동안 엄격한 금욕주의자였던 스승과 함께 머물며
은수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그는 이집트 상부 테베
(Thebae, 나일 강 중류에 위치한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로 오늘날의 룩소르 Luxor) 의
타벤니시(Tabennisi)라는 황폐한 마을에 이르게 되었고,
그곳에 머물며 기도하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너를 찾아와 수도자가 될 것이니 그곳에 머물러 집을 한 채 지어라"
하는 천사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한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말하기를 하느님의 뜻은
그가 인류에게 봉사하며 그들을 하느님과 화해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는 320년경 그곳에 움막을 세웠다.
그러자 즉시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 후 그는 테베에만도 6개의 큰 수도원을 세웠고,
자매들을 위한 수녀원도 세웠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를 철저히 배격했고,
라토폴리스의 주교회의를 공공연히 비난하였다.
그가 임종할 즈음에는 그의 수하에 약 3천 명의 수도자들이 있었고,
2개의 수녀원도 있었지만 사제로 서품되지는 않았다.
그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지역에서 환자들을 돌보다가 전염되어
346년 또는 347년 9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성 파코미우스는 공주(共住) 수도생활(vita coenobitica)의 창시자로 꼽히며,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 역시 그의 규칙을 여러 번 인용하여
자신의 규칙을 만들만큼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는다.
그의 수도생활은 영성적인 요소가 강하면서도 성사적 생활과 전례에 충실하였다.
성사적 생활과 전례는 성 파코미우스 수도자들의 영성을 담는 그릇이자
수도생활에 힘을 불어넣는 활력소였다.
그리고 각자의 영적인 부(富)는 공동생활에 있어서 전체를 위한 선물로 이해하였다.
*굿뉴스 자료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