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 그리고 중세 시대 사순 시기 음식
주님 부활 준비하는 은총의 시기… 극기와 희생 통해 수난에 동참 -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기간에 회개와 보속 · 절제와 희생의 삶을 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자선을 실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 회개하고 기도하는 사순 시기이다. 지난 호 ‘재의 수요일’ 전례 의미에 이어 사순 시기에 관해 정리했다. 사순 시기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주님의 수난은 단순히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돼 있다. 교회는 이 시기를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게 하는 때”(「전례 헌장」 109항)라고 한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파스카 성삼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기간을 말한다. 이 기간에 ‘사순 제1주일’부터 ‘주님 수난 성지 주일’까지 모두 6번의 주일을 지내는데 주일은 사순 시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주간’이 시작되며, ‘주님 만찬 성목요일’ㆍ‘주님 수난 성금요일’ㆍ성토요일ㆍ파스카 성야의 3일간을 ‘파스카 성삼일’이라 해서 사순 시기와 구분한다.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까지 통상 40일이라고 해서 ‘사순’(四旬)이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38일간이다. 40의 성경적 의미 사순 시기는 본래 40일을 의미하는 라틴말 ‘Quadragesima’(콰드라제시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 거치는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뜻한다. 하느님께서 홍수로 새 세상을 준비하실 때 40일간 비가 내렸다.(창세 7,6-24) 또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시나이 산에서 단식하며 40일간 지냈다.(탈출 24,12-18; 34,28) 이후 모세는 우상숭배를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십계명 판을 부순 후 다시 40일간 밤낮으로 기도한 후 십계명 판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신명 9,15-29) 아울러 엘리야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40일간을 걸어서 호렙 산으로 갔다.(1열왕 19,8)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복음을 선포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간 단식을 하며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1-13; 마태 4,1-11; 마르 1,12-13) 이처럼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참회와 속죄로 자신을 정화하고 준비할 때 40일이라는 기간을 정해 놓고 행했다. 이 성경의 전통을 교회가 고스란히 받아들여 40일간 기도와 절제, 희생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사순 시기 전례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 동안 대축일을 제외한 모든 미사 중에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환호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노래하지 않는다. 사제 제의 색도 통회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보라)으로 바뀐다. 제단 꽃장식도 할 수 없다. 사순 시기 주일은 주님의 축일과 대축일에 우선 한다. 사순 주일과 겹치는 대축일은 토요일에 미리 거행된다. 특히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파스카 성야 미사까지의 성주간은 전례주년의 1순위라 할 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순 시기 전례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이다. 사순 제1ㆍ2ㆍ6주일 미사 독서 주제는 해마다 모두 같다. 사순 시기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사순 제3ㆍ4ㆍ 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2020년(가해)에는 사순 제3ㆍ4ㆍ5주일의 주제가 각각 생명의 물, 빛, 부활에 초점을 맞추며 요한복음에서 본문을 선택하고 있다. 사순 시기 생활 사순 시기는 주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으로서 고행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제대로 맞기 위한 준비, 즉 정화와 성화(聖化)의 시기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이 기간에 주님 부활을 준비하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극기와 희생을 통해 기쁨 중에 주님의 수난에 참여해야 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부활 대축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 동안 회개와 보속, 기도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외적인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절제와 절약을 통해 모은 결실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자선이 뒤따라야 한다. “사순 시기의 보속이 단지 내적이고 개인적이어서는 안 되고 동시에 외적이고 사회적이어야 한다.”(「전례 헌장」 110항)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순 시기 동안 “서로 용서하고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곳을 찾아 주는 등 자비를 실천하자”고 강조하면서 “회개하기 매우 좋은 이 사순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당부한 바 있다. 사순 시기에는 판공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고해성사를 통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해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고, 부활 축제의 기쁨을 누릴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함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음료 ‘맥주’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사순 시기 동안 특별히 마시는 맥주가 있다. 바로 ‘bock bier’(복비어)이다. 맥아와 홉의 함량이 16%가 넘는 맑은 맥주와 흑맥주를 가리켜 복비어라 한다. 복비어는 다른 맥주보다 당과 단백질, 미네랄, 비타민 등이 많아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됐다. 중세 때에는 사순 기간 내내 금식이 이어졌다. 그래서 중세 수도원에서는 춘궁기와 때를 같이하는 사순 시기 동안 농부들과 가난한 이들에게 복비어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일반적으로 음식이 부실했던 수도자들과 농민들에게 맥주는 단순히 술이 아니라 일종의 ‘영양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중세 독일인들은 수도원에서 아침마다 나눠주는 복비어로 배고픔을 이겨내고 연명할 수 있었다. 또 중세 수도자들은 가난한 농민들뿐 아니라 병자들에게도 맥주를 규칙적으로 일정량 치료제로 공급했다. 당시 유일하게 살균 과정을 거친 위생적인 음료가 맥주였기 때문이다. 이에 당시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살바토르’(구세주)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음료는 금식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liqui da non fragunt ieuneum)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도 독일에서 맥주를 가장 많이 소비하고 있는 바이에른 주에서는 맥주를 ‘흐르는 빵’이라고 하고, ‘살바토르’라는 상표를 붙여 생산 판매하고 있다. 복비어는 도수가 높고 단맛과 짙은 색깔로 ‘살찌는 음료’라는 인식이 있지만, 일반 우유보다 열량이 적다. 살아있는 효모는 피부 미용에도 좋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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