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발견(發見)의 여정 - 2013.5.30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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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5-30 | 조회수359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3.5.30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집회42,15-25 마르10,46ㄴ-52
주님을 보고 따르는 여정입니다. 눈이 있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알 때 겸손입니다. ‘길눈이 밝다(어둡다)’, ‘일 눈이 밝다(어둡다)’ 등,
하느님만은 모두를 보십니다. 묵상 중 미래를 볼 수 없음이 얼마나 큰 하느님의 은혜인지 깨닫습니다. 미래를 모르기에 희망과 자유이지
하느님은 밝은 데서만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역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미사장면을 압축하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숙명론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주님을 찾는 갈망이 있었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대로 미사 전 우리가 바치는 자비송입니다. 주님의 자비를 청할 때 주님의 응답입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마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 같습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십시오. 바르티매오는 숙명론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부르심과 치유가 동시에 발생하는 순간입니다. 주님과 바르티매오의 문답이 단순명쾌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간절하고 절실하면 물음도 답도 간단합니다. 정작 진짜 소원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제대로 보지 못해 오해요 착각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믿음의 눈이 열려 다시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바르티매오입니다.
주님을 보라고 있는 눈이며 주님을 따르라고 있는 발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한계를 받아들임으로 초월이요 자유로움입니다.
이런 주님을 보고 따르는 여정 중에 선명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참 나입니다.
아침 산책 중 수도원 정문 옆,
글씨가 없으면 별 볼일 없는 돌덩이에 불과할 텐데 마찬가지 별 볼일 없는 초라한 사람 같아도 서로 마음 판에 새겨진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할 때 믿음의 눈만 열리면 온 세상에서 하느님을 보며 하느님을 체험합니다.
“그분의 업적은 모두 얼마나 아름다우며, 얼마나 찬란하게 보이는가!
자연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위대함을 보고 노래하는 집회서의 저자입니다. 믿음의 눈만 열리면 지금 여기서 진선미 하느님을 보고 체험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의 눈을 열어 주시어
“용기를 내어 일어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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