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품위 있는 삶, 품위 있는 죽음 - 2013.6.5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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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3-06-05 | 조회수473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13.6.5 수요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675-754)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토빗3,1-11ㄱ.16-17ㄱ 마르12,18-27
거룩한 삶 있어 거룩한 죽음입니다.
세월 흘러 나이 들어도 늘 신록의 나무들처럼,
신록의 희망 중에 선종할 수는 없을까요? 가능합니다.
죽음은 사변의 대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누구나 직면해야 할 죽음의 현실을 품위 있게 맞이하게 위한 준비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성 베네딕도 뿐 아니라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권고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비로소 제대로 살게 됩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죽을 수 없음은 제대로 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살았을 때 제대로 죽을 수 있습니다.
“죽어도 한이 없다.”
어쩌다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1독서의 토빗과 사라의 기도가 참 절실합니다.
‘바로 그때 두 사람의 기도가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 다다랐다.
사람 눈에 기적이지 하느님 눈에는 사필귀정입니다. 하느님은 기도하는 영혼들을 당신 방식으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두가이들의 수준이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내용들로 주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의 인내가 놀랍습니다. 예수님은 우문현답으로 이들의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십니다.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바로 우리의 기도는 이런 부활의 희망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하여 성 베네딕도는 규칙에서 ‘자신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고,
우리의 참 희망이신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을 갈망하며 항구히 기도할 때 죽음에 대한 참 좋은 준비는 하루하루 사는 일뿐입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永遠)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여기서 저절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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