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만 그 자유를 육을 위하는 구실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한다면,
서로가 파멸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
17 육이 욕망하는 것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은 육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환호송◎
1사무 3,9; 요한 6,68
◎ 알렐루야.
○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고 있나이다.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
◎ 알렐루야.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1-62
51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55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요한 묵시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3,15)
이 말씀의 배경에는 라오디케이아 지역의
상황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유해서
선망의 지역이기는 했지만,
한 가지 흠이 있었습니다.
그 도시 안에서 자체적으로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데미즐리라는 곳에서 관을 통하여
물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니 그 물은 미지근할 뿐 아니라
먹으면 구토를 일으킬 정도였고,
건강에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 반면 인근 도시였던 콜로새에는
아주 차고 신선한 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인근 도시인 파묵칼레에는
온천수가 있어서 많은 이가 그 물로
피로를 풀고 건강을 유지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신자들에게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고 하신 것은,
그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풍요와 안락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당시 소아시아에서
부유하게 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교도 의식에
참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교도 의식과 경제 구조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은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이러한
영적인 상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길을 따르는 자세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 자세는 반대편에 대한 적개심,
보금자리에 대한 근심과 걱정,
소중한 사람에 대한 애착 등에서
단호하게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뿐 아니라
불의까지도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