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회과 아우구스티니아노회 사이에는
이탈리아 스폴레토(Spoleto) 교구의 몬테팔코에서 태어난 성녀 클라라(Clara) 수녀가
서로 자기 수도회의 성녀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 이유는 성녀 클라라가 요안나(Joanna)의 지도를 받으면서
15년 동안 은둔소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곧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근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폴레토의 주교에게 정규 수도원 생활을 간청하여 허가를 받을 때,
그 주교가 성 아우구스티누스 회의 회칙을 주었다.
이들의 은둔소는 1290년에 수도원으로 세워졌고,
요안나가 죽고 난 뒤에 성녀 클라라는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이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의 생활은 그 엄격성과 높은 덕으로 유명하다.
하루의 대부분은 침묵으로 지냈고, 눈이 오더라도 맨발로 다녔으며,
하루에 주님의 기도를 백 번씩 바쳤다고 한다.
그녀의 말과 표양은 공동체가 완덕을 지향하는데 큰 격려가 되었고,
하느님과의 일치는 관상생활의 모범이 되었다.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수도원의 재산을 수도원 밖의 사람들도 이용하도록 배려하는 등
획기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성녀 클라라는 우리 주님의 고난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다.
그 때문에 성녀의 몸에 십자가의 형상이 인각되었다고 전해져 온다.
그녀는 1737년에 교황 클레멘스 12세(Clemen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81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 가톨릭 굿뉴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