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그리스도인의 덕성을 표상하는 식물들 - 부들, 느릅나무, 전나무 하느님의 자녀요 그분 말씀의 추종자로서 그분께서 일러 주시는 바를 오롯이 새기고 실행하며 살아가는 데는 도움과 보탬이 될 덕성들, 이를테면 신실함, 겸손함, 인내심 등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식물의 서식지며 서식 형태, 모양새와 특성 등을 보면서 그러한 덕목들의 상징성을 읽어냈다. 부들: 구원, 그리스도인의 신실함과 겸손함의 상징 꽃꽂이에 많이 사용되면서 우리에게 친숙해진 식물 중 하나로 부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연못 가장자리나 물이 많은 습지의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는 무리지어 자라는 부들이 흔히 눈에 띈다. 부들목 부들과의 여러해살이 외떡잎식물인 이 식물은 뿌리줄기가 옆으로 뻗으면서 퍼져나간다. 6~7월이면 노란색 꽃을 피우는데, 꽃줄기의 아래에는 암꽃무리가, 위에는 수꽃무리가 따로 분리되어 달린다. 그리고 이 꽃무리들이 꽃가루받이를 하여 7~10㎝ 길이의 핫도그처럼 생긴 적갈색 열매이삭을 맺는다. 부들이라는 이름은 그 잎이 부드럽기 때문에, 이를테면 ‘부들부들하다’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 부드러운 잎은 방석이나 공예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열매이삭은 독특한 생김새로 꽃꽂이 소재로 많이 이용된다. 부들은 종류에 따라 암꽃무리와 수꽃무리 사이의 거리에 차이를 보이는데, 두 꽃무리의 사이가 가까워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큰부들이고, 그 사이가 다소 떨어져 보이는 것은 애기부들이다. 큰부들은 북반구의 온대지방에 주로 분포하고, 애기부들은 유럽과 아시아의 온대와 난대 그리고 지중해 연안에 주로 분포한다. - 애기 부들. 구약성경 탈출기 2장에는 갓난아기인 모세가 강가의 갈대숲에서 발견되고, 파라오의 딸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욥기에는 “습지가 없는데 왕골이 솟아나고 물이 없는데 갈대가 자라겠는가?”(8,11)라는 구절이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말로 ‘갈대’라고 번역된 식물이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는 예로부터 ‘부들’로 이해되어 왔다. 그들은 부들이라는 식물에서 중요한 신앙적 상징성을 읽어냈다. 모세는 일찍부터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여겨져 왔는데, 이러한 모세가 부들이 자라는 곳에서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이 일과 관련해서, 부들이 서식하는 곳은 하느님의 구원이 비롯되는 장소를 상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듯 예사롭지 않게 생애의 초반을 시작한 모세는 훗날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자가 되어 이집트에서 빠져나가는 그들을 이끌었고, 그랬기에 부들은 해방과 구원을 상징하게도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평범한데다 어찌 보면 하찮다고도 할 수 있는 식물인 부들이 생명의 근원인 물이 있는 곳에서 번식하며 자라는 모습이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 순명하면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이 지닌 신실함과 겸손함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욥기 8장11절이다. 느릅나무: 존엄성과 신실함의 상징 친숙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느릅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낙엽활엽수림을 대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그런데 영어 이름이 Japanese Elm이라는 점을 보아서는 다분히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의 식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쌍떡잎나무인 느릅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의 계곡 부근에서 서식한다. 큰키나무에 속하는 이 식물은 사방으로 가지들을 뻗으며 크고 굵게 자라는데, 높이는 15~25m, 줄기 지름은 60cm정도에 이른다. 느릅나무의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회갈색 나무껍질은 한방에서 약재로 쓰이며, 목재는 건축, 가구, 선박, 목공예 재료, 표고버섯 재배원목, 땔감 등으로 쓰인다. 가로수, 정원수, 공원수로 심기도 한다. 한국과 일본 외에 중국, 시베리아 등지에도 분포한다. 다소 생소했을 느릅나무를 접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모양을 보고 강력하고 영광스러운 나무로 여기게 되었다. 무성하게 자라는 느릅나무의 모양새가 생명의 존엄함 또는 자존감을 나타낸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사방으로 가지들을 뻗으며 우람하게 자라는 모습은 독실한 믿음에서 나오는 그리스도인의 힘, 곧 하느님의 말씀에 굳건하고 확고하게 뿌리를 두는 그리스도인의 권능과 우월함을 상징한다고도 보았다. 전나무: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인내심의 상징 전나무는 이름만으로도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식물이다. 잎이 바늘 모양인 전나무는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 큰키나무이다. 높이는 40m까지 자라고 굵기는 지름 1.5m에 달할 정도로 크게 자란다. 전나무는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 식물로 추위에도 강하다. 한때는 젓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어느 식물학자가 이 나무에서 진액, 곧 젖이 나온다고 해서 전나무를 젓나무로 고쳐 부른 데서 기인한다. 나무의 재질이 우수하여 펄프 원료, 건축 재료, 고급 가구 재료로 이용되어 왔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다워서 도시의 풍치수와 정원수로 많이 활용되었다. 또한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그러나 공해와 특히 에틸렌, 아황산가스 등에 취약하여 도시 지역에서는 점점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전나무에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하늘을 향해 높고 곧게 자란다는 점이다. 이 점을 눈여겨본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높이 곧게 자라는 전나무가 하찮은 욕망들을 경멸하고 극복해 가며 오로지 하느님(또는 천국)만을 동경하며 매진한 사람들, 그리하여 하느님께 선택된(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뽑힌) 사람들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또한 그러한 경지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인내심을 발휘한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보았다. 한편, 서양에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가 전해 온다. 성 보니파티오(675?-754년)가 교황에게서 이교(異敎)가 만연해 있던 독일에 가서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보니파티오는 마침내 이교 세력이 가장 강력하던 지역으로 가서는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며 받들던 떡갈나무를 베어냈다. 그 나무는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에게 봉헌한 나무였다. 보니파티오는 그들이 신성시하는 나무를 잘랐지만 그들의 예상과 두려움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힘주어 말했고, 베어낸 나무를 하느님의 집인 경당을 짓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떡갈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늘푸른나무인 전나무를 심었다. 그러고는 사시사철 푸름을 잃지 않는 전나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설파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트리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7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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