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worthy to have you enter under my roof.
Therefore, I did not consider myself worthy to come to you;
but say the word and let my servant be healed.
(Lk.7,6-7)
제1독서 1티모 2,1-8
복음 루카 7,1-10
많은 학부모들의 주관심사는 아마 자녀들의 성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수능 시즌이 되면 학부모들의 정성이 얼마나 커지는지 모릅니다. 이때는 신앙이 중요한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각종 미신이 다 등장하지요. 시험 날 미역국을 먹으면 미끄러진다고 하고요, 시험기간이나 시험 날에 머리 감으면 머릿속 지식이 씻겨 나간다는 등등의 미신을 굳게 믿는 것 같습니다. 이는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가 강화에 살고 있었을 때, 수능 때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절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서 정성을 다해서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이곳의 스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불교를 믿는 사람만이 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능 성적만 잘 나올 수 있다면 자신의 종교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겠지요.
주님께서는 믿음의 중요성을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믿음이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주님보다 다른 것을 더 많이 믿기 때문입니다. 통장의 돈을 믿고, 사람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세상의 지위를 믿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서, 주님께 대해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도 만들지 못하는 것이지요.
믿음이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주님께 무조건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급할 때에만 주님께 찾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란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백인대장과 같은 믿음입니다.
로마의 백인대장이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지요. 그래서 이 백인대장의 노예를 고쳐달라고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호의를 알고는 고쳐 주려고 하지요. 바로 그때 백인대장은 친구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주님, 수고하실 것 없습니다.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말씀만 하시어 제 종이 낫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믿음과 다른 모습이 무엇일까요? 백인대장은 자신이 주님을 모실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즉, 주님이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주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된 믿음만이 참된 믿음이라고 예수님께서 감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내 자리로 주님이 오셔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사는 것. 내가 주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 이러한 믿음이 지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