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신앙의 어머니 마리아/신앙의 해[3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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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3-09-24 | 조회수55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그림 : 수원 교구 던지실 성당
왜 살고 있는가? 가끔은 이런 질문을 떫게 여기면서 그 답변을 피하려만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산다. 암튼 이 물음에 어떤 형태로든 답은 있어야 삶이 분명해질 게다. 그 답변 가운데 하나는 분명 가족이 있다. 배우자와 자녀, 부모 형제 때문에 산단다. 그렇다. 가족이라는 인연만큼 소중한 건 이 세상에 없다. 그들과의 관계를 기쁨으로 만드는 게 삶에서 정말 중요할 게다. 그 관계가 엉망이라면 ‘주님의 개입’을 간절히 청해야만 하리라. 가족 간의 일치는 주님의 은총 없이는 정녕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께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을 뵈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알려 드렸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19-21)’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부모님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다. 축제가 끝나고 사흘이 되어서야 당신을 찾으신 부모님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라며부모님을 쾌나 섭섭히 해 드린 적이 있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면 혈육의 정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는 걸 이미 소시 적부터 예고를 하신 거다.
예수님은 그때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 주신다. 어머니가 아들이 보고 싶어 찾아왔으나 그분께서는 성모님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고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라고 냉정히 말씀하신다. 아들 예수님의 이런 반응에 우리 성모님은 그 옛날 그 섭섭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셨는지도 모른다.
이는 예수님은 불효자가 아닌, 어머니 마리아를 육정을 넘어서는 진정한 신앙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모자의 혈육에만 매달려서 그 큰 하느님의 뜻을 바라보지 못하면 어떻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겠는가? 예수님은 제자들과 그곳 모두에게 당신과 성모님의 관계는 육정에 매인 게 아닌 하느님과의 큰 뜻을 이루려는 관계임을 보인 것이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해타산에만 젖는 가족 관계를 주님 말씀으로 다져지는 찐한 혈육의 가족으로 거듭나야만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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