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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도자의 양심/신앙의 해[309]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26 조회수480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마산 교구 명례 성지

 

언제부터인지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단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는 변명에 불과할 따름이다.

종교도, 정치도 백성이 없이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모두가 백성을 위한 행위이고,

그 백성이 참여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종교요 정치일 게다.

가끔 위정자는 그러한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하려 든다.

그건 이전 일이라면서 자신과는 무관하다나. 이에 우리는 누구를 따라가야만 할까?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루카 9,9)’

우리도 이렇게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지은 죄 때문일 게다.

진리와 정의를 저버렸을 때 오는 양심의 소리가 불안이리라.

그는 회개하라는 세례자 요한의 충고를 무시하고 불의를 저질렀다.

따라서 아무리 권력자라도 지은 불안이 도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짓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지은 죄를 되돌아보며 뉘우치는 시간을 가지지 않는 데 있다.

성찰과 정화의 시간이 없이 거듭되는 죄는 양심을 무뎌지게 한다.

문제는 지도자가 마지막 보루인 그 양심마저 내몰라하면

마침내 바다 한가운데에서 좌표를 잃은 배처럼 모두가 제 모습을 잃고 표류할 게다.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되리라.

문득 이전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를 마주할 수밖에.

 

인디언들의 벽화나 상형 문자는 아이들 마음은 세모,

어른의 마음은 동그라미로 표현한단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픈 건 죄 지을 때마다

세모꼴 양심이 회전하면서 뾰족한 모서리가 마음을 긁기 때문이라나.

허나 한두 번 범하면서 모서리는 점점 닳아 동그랗게 변한다.

결국 어른이 되면 죄도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게다.

 

가끔 진실을 왜곡하거나 피하려 드는 지도자를 볼 때마다 마음이 되레 안타깝다.

믿음의 생활을 하는 이는 이런 양심에 반하는 일에 분노해야 할 게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진리와 정의의 말씀에 언제나 함께 하기에 지도자가 바른 길 가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운명을 주관하시는 그분도 언제든 함께 해 주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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