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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축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 의미와 유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8-09 조회수7,941 추천수0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 의미와 유래


주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하느님의 아들’ 선언하고 드러내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준다. 그림은 라파엘로가 1581~1520년에 그린 ‘주님의 거룩한 변모’ 작품으로 바티칸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교회는 8월 6일에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낸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엘리야와 모세와 이야기를 나눈 사건(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해 제자들에게 구세주로서 자신의 신원을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신께 대한 제자들의 믿음과 확신을 더욱 확고하게 하셨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아 이 축일의 의미와 유래를 소개한다. 내용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주석 성경」,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나자렛 예수」 등을 참고했다.

 

 

베드로의 고백과 초막절

 

마태오와 마르코,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있기 전 베드로 사도가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주님께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마르 8,30; 루카 9,20)라고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다음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엿새 뒤 주님께서는 제자들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오르셔서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 이 세 제자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기 전 올리브 산에서 번민 중에 기도하실 때 다시 한 번 주님과 동행합니다. 이런 이유로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예시하는 두 이정표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특별히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에서 산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나자렛은 산동네입니다. 주님께서 세례 후 유혹을 당하고, 참행복을 선언하며, 거룩한 신성을 드러내 보이시고, 밤새워 기도하며, 십자가에 매달렸던 곳 모두 산이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장소는 ‘타보르 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일련의 두 사건은 언제 일어났을까요. 학자들은 유다인의 두 축제에 주목합니다. ‘속죄일’(욤 키푸르)과 그다음 엿새 뒤에 한 주간 동안 계속되는 ‘초막절’(수콧) 입니다. 베드로의 고백은 속죄일에 있었다고 합니다.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일 때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서 대사제가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한 베드로의 고백은 이 속죄일을 배경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속죄일 엿새 뒤 거행하는 초막절과 관련돼 있습니다. 초막절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고 40년 광야 생활 동안 지켜주신 은혜를 기념하며 장차 오실 주님을 마중하는 희망의 축제입니다. 이 축제 동안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고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완성하고 모든 피조물이 서로 화해할 것임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이제 복음서가 전하는 주님의 변모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살펴봅시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납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말씀을 나누는 동안 일어난 일이 세 제자의 눈에 보이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기도의 중요성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당신의 구원사업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특별히 어떤 중대한 일을 행하기 전이나 어떤 위기에 처했을 때 주님은 반드시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을 따로 가졌습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2)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마르 9,3 참조) 세 복음서가 전하는 거룩하게 변하신 모습입니다. 빛은 주님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나온 빛입니다. 주님은 빛에서 온 빛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빛에서 온 빛이신 것은 아버지 하느님과 같은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변모 때 하얗게 빛나는 주님의 옷은 우리의 미래를 예시해 줍니다. 흰옷은 하늘에 있는 존재, 곧 천사들과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들이 입는 옷입니다.(묵시 7,9.13 참조) 그래서 세례성사 때 영세자는 흰옷을 입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주님과 함께 빛을 옷 삼아 입게 되었고, 우리 스스로 빛이 된 것입니다. 흰옷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또 바뀌어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은 창조된 우리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자, 지금 여기서 이미 시작된 우리의 현실이며, 부활 때 충만하게 누릴 구원 은총을 미리 맛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결과인 주님의 부활과 세상 마지막 날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영광을 미리 보여줍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

 

주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실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라는 소리가 났습니다. 구름은 하느님 현존의 표징입니다. 구름 속에서 난 소리는 주님의 세례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때도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구약에서는 천사,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의 왕들을 지칭해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주님의 세례(마태 3,17) 때와 거룩한 변모 (마태 17,5) 때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니코데모와의 대화 중에 예수께서 자신을 “하느님의 외아들”(요한 3,16)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신성을 선언하시고 믿음을 요구하십니다.(요한 3,18) 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보고서 백인대장이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르 15,39) 했고,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신성을 증거하는 말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씁니다.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자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로마 1,4)

 

이처럼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도래한 하느님 나라의 권능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엘리야 두 구약의 증인들과 말씀을 나누면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고난의 길이 영광에 이르는 길임을 알려주십니다.(루카 24,26-27 참조) 세 제자는 이 장면을 목격하면서 주님을 통해 진정한 초막절, 곧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순 제2주일 복음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내용인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세 제자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루카 9,36)는 설명으로 끝이 납니다. 제자들의 침묵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내리신 함구령을 그대로 지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함구령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풀립니다. 루카 복음서 저자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 강림 이후부터라고 합니다.(사도행전 2장 참조)

 

 

왜 8월 6일인가

 

교회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성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40일 전날에 지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40일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 중반 나폴리와 독일, 스페인 지역을 중심으로 이 축일을 처음 기념했고, 10세기부터 로마와 프랑스 등지로 급속히 퍼져 나갔습니다. 이후 1457년 갈리스도 3세 교황이 전례력에 도입해 보편 교회가 이 축일을 지내게 됐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8월 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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