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who speak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the one who blaspheme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Lk.12,10)
제1독서 로마 4,13.16-18
복음 루카 12,8-12
옛날 그리스도교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어떤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없애기 위해 신하들과 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한 신하가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다 죽이자.”라고 제안하자, 다른 신하가 “그들이 기쁘게 순교하는 것을 못 보셨습니까? 아마 그렇게 하면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할 것이고, 이로써 그 세력이 더 늘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신하가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니 박해를 더욱 더 심하게 합시다.”라고 말합니다. 이번에도 다른 신하가 나서서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더 예수라는 신을 경외하고 뜨겁게 믿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신하가 별 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합니다.
“뭘 그렇게 고민하십니까? 그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십시오. 돈도 많이 주고, 부족한 것이 없게 만들어 줘 보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스스로 타락해서 쫄딱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무엇이든 다 채워져야 행복할 것 같지요. 그러나 다 채워졌을 때가 가장 커다란 위기의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넘침과 편안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부족함과 힘듦 가운데 노력할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하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는 정반대로 정신적인 피폐함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부족하다고 또 힘들다고 좌절하고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행복의 순간에 가까워졌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순간을 두려워하지도 또 걱정하지도 말라고 하시지요. 왜냐하면 성령께서 함께 해주셔서 어떤 말을 해야 할 것까지도 다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면 그만큼 행복과 가까이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성령과 함께 하는 삶, 주님을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행복이 있는 하느님 나라에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 자신은 얼마나 행복에 가깝습니까? 또한 얼마나 성령과 함께 하고 있으며,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고 있습니까? 어떤 책에서 본 글인데, 동물들이 달리기를 합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은 결승점을 향해서 뛰어나갔지만, 가장 느린 달팽이 둘은 아직도 출발점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자 달팽이 하나가 말하지요.
“다 같이 출발했는데, 우리 둘밖에 안 보여.”
그러자 다른 달팽이는 그 말을 받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하지 마. 우리보다 먼저 떠난 다른 동물 모두 이 지구 안에 있을 거야.”
세상 안에서는 많고 적음을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고, 세상에 주님을 증거하는 삶 안에서 분명히 세상의 것을 뛰어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