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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신앙의 해[344]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0-31 조회수522 추천수0 반대(0) 신고

 

                                                               그림 : 원주 교구 원동 주교좌 성당

예수님 시대 예루살렘 성전은 ‘헤로데 왕’이 증축했다. 그는 로마 시민권을 소유했고 서른일곱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유다인이 아니었기에 ‘출생 콤플렉스’를 늘 갖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려고 ‘마카베오’ 가문의 ‘미리암’ 공주와 재혼했고, 예루살렘 성전에도 손을 댔다. 성전은 기원전 20년에 시작해 46년이나 걸렸다.

그러나 기원후 66년부터 시작된 ‘유다 독립전쟁’은 헤로데가 심혈을 기울였던 성전을 초토화시켰다. 70년 여름,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군대는 성전 안에서 ‘결사 항전’하던 유다 독립군들을 소탕했다. 이 과정에 성전은 ‘돌 위에 돌이 얹혀 있지 못할 만큼’ 심하게 파괴되었고, 겨우 남은 게 ‘통곡의 벽’인 서쪽 성벽의 일부이다.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아!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너희에게 말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라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루카 13,31-35 요약)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신다. 그 성전파괴를 마음 아파하신 거다. 모든 것은 예언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말씀을 거부한 결과’라신다.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은 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이라면 누구나 예언자일 게다. 그들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을 도외시하기에 분열이 있고 불화가 생겨난다.  

사실 우리는 세상 것에 너무나 많이 두리번거리며 산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그것이 윤리에 어긋나든 인생에 독이든 아무 생각 없이 몰린다. 남들이 좋다면 소질과 취향에 관계없이 나선다. 삶의 중심이 없고 인생의 목표와 철학이 없기에 휘둘린다.  

예루살렘, 이곳은 하느님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를 하였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예언자들을 죽였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길을 간다. 예언자는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에.”

예수님은 굳이 예루살렘에서 돌아가셔야만 했을까? 그분은 그 백성이 외아들마저도 죽이는 죄를 저지르지만, 예수님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다. 그렇게 그분은 예루살렘에 참된 평화를 선사하셨다. 신앙의 해를 보내는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라고 자신을 가지고 말하면서 어떻게 하면 깨끗한 신앙인으로 충실하게 살 수 있을까를 늘 묵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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