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사람 [하느님의 잔치, 혼돈의 유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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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이수 | 작성일2013-11-05 | 조회수43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루카 14,15 - 24>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로마 15,5 - 16 / 제1독서 참조> .......................................................................
한길과 골목 그리고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여기저기 버려진 이들을 가리킵니다. 사회로부터 또한 공동체로부터 버려진 이들을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그들과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보여지고 무관심하면 볼 수 없는 소외되어진 이들입니다.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과 같은 그들과는 달리 버려진 이들에게 다가가셨으며 일치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는 예수님께서 돌아보시는 그들에게 열려져 있습니다.단순한 겉모습으로 부자와 빈자로 사람을 차별하시는게 아니라 뭇사람들에게서 버려진 이들을 관심있게 사랑하신다는 의미를 분명하게 나타내신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버려진 이들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모습을 직접 전달해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한다면 버려진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이십니다.버려진 이들에 대한 관심도 없고 사랑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며 또한 그런 삶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과 명예를 차지한 사람들을 버려진 사람들보다도 우선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거기에 열중하는 나머지 버려진 이들은 더욱 소외되어지는게 현실입니다.그러나 그들에게서는 세속적이고, 육적인 것들을 보고 배울 뿐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에 있는 버려진 이들에게서는 천상적이고 영적인 것들을 보고 배울 수 있게 됩니다. 돈의 부와 돈의 권력 같은 세속의 힘에서는 육적인 것들에 유혹을 받지만, 버려진 이들에게서는 그들과 함께 일치해 계신 예수님의 사랑과 천상의 영적인 것들이 하느님으로부터 받게 됩니다.사랑하지 않으면 육적인 인간이 되지만 사랑하면 영적인 인간으로 변화된다 할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은 영"(요한 4, 24참조)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육에서 태어난 것은 육이고 영에서 태어난 것은 영"(요한 3,6 참조)이다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복음에 있습니다. 세속의 육적인 것들에서 배우고 태어난 사람들은 여전히 '육의 인간'입니다. '육의 인간'은 육과 함께 죽음에 이르지만, 위로부터 내려오는 영적인 것들을 배우고 다시 태어나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인 '영의 인간'이 되어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여러분이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로마 8, 13 참조) "영은 생명을 준다"(요한 6, 63 참조)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버려진 사람들을 사랑하며 예수님 안에 있는 '영의 인간'은 영(성령)의 힘으로 세속의 육적인 것들을 죽이면서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을 배우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하면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천상의 것인 까닭에 사랑의 하느님 나라에 합당합니다. 돈의 힘과 불완전한 규정들 및 방침들의 힘과 거친 삯꾼들의 지배 아래에서 죄, 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사람은 죄, 악에 속박되어 사랑하지 못하며 사랑을 알지 못하여 죽음의 육적인 것들에서 호흡합니다. 한편, 그와 반대로 버려진 이들과 함께 일치되어져 예수님의 사랑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하는 사람은 사랑하면서 사랑을 배우고 생명의 영적인 것들에서 삽니다. 사람들은 오늘 누구와 살고 있습니까. 버려진 이들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란 없으며 사랑을 잃고, 오히려 사랑을 미워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은 옛날 그들의 삶으로 다시 반복하면서 살고나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시대의 사람들 역시 십자가 죽음을 너무나 당연시 여기는 '익숙함'에 빠져있습니다. 여기에 2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죄, 악을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며 악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용서받았다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며 악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죄, 악을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회개하는 죄인이며 회개하는 악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용서받은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의인이며 성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되게 하는 게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언제나 자신이 의인이다고 여기며 남들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사람으로 회개할 수가 없어 언제나 죄인으로 남는 것입니다.반대로 회개하는 죄인은 자신이 죄인으로 여기며 주님 앞에서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으로써 회개하며 사랑으로 새롭게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용서받아 예수님 안에서 의롭게 또,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새 사람이 되어진 것입니다. 바로 '영(하느님)의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입으로는 죄인이다고 말하면서도 참으로 회개하지도 않기에,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써 정말로 죄인, 악인으로 남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죄, 악스러운 것들을 서로 공유한다면 그 자신은 (그 공동체는) 십자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그냥 먹고 마시는 것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그냥 먹고 마시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성체성사적 삶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이 되어라고, 십자가에서 용서하시고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신게 아닙니다.십자가 죽음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혼돈'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은 사랑스러운 것들로 서로 공유하면서 사는게 힘들어 집니다. 사랑의 힘에 무기력해져서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하는 가르침을 행동으로 실행하지 못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되어라고 당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회개하는 죄인으로써 용서받아 - 성체성사적인 사랑의 삶으로 의롭고 거룩한 새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는 거짓없는 - 사랑의 사람이 하느님의 잔치 음식을 진실로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래 댓글 3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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