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씀의초대◎ 2013년 11월11일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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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3-11-11 | 조회수34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3년 11월11일 월요일 [(백)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마르티노 주교는 316년 무렵 헝가리 판노니아의 이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로마에서 공부한 그는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신비 체험을 하였다. 곧, 추위에 떨고 있는 거리의 한 걸인에게 자신의 외투 절반을 잘라 주었는데, 그날 밤 꿈속에 그 외투를 입은 모습의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던 것이다. 곧바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된 그는 나중에 사제가 되었으며, 370년 무렵에는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착한 목자의 모범을 보이며 복음 전파에 전념하였다. 프랑스 교회의 초석을 놓은 마르티노 주교는 프랑스 교회의 수호성인 가운데 한 분으로 존경받고 있다.
◎말씀의초대◎ 지혜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다정한 영이다. 그러기에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어리석은 자로 드러나기 마련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죄에 대하여 가르치신다. 남을 죄짓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며,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으면서도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제1독서◎ <지혜는 다정한 영이고, 주님의 영은 온 세상에 충만하시다.> 1 세상의 통치자들아, 정의를 사랑하여라.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
2 주님께서는 당신을 시험하지 않는 이들을 만나 주시고, 당신을 불신하지 않는 이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의 권능을 시험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로 드러난다.
4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
거룩한 영은 거짓을 피해 가고, 미련한 생각을 꺼려 떠나가 버리며, 불의가 다가옴을 수치스러워한다.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자는 그 말에 책임을 지게 한다. 하느님께서 그의 속생각을 다 아시고, 그의 마음을 샅샅이 들여다보시며, 그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물을 총괄하는 존재로서 사람이 하는 말을 다 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9(138),1-3.4-6.7-8.9-10(◎ 24ㄴ 참조) ○ 주님, 당신은 저를 살펴보시고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주님, 당신은 이미 다 아시나이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저를 감싸 주시고, 제 위에 당신 손을 얹으시나이다.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저에게는 너무 높아 닿을 길 없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당신 얼굴을 피해 어디로 달아나리이까? 하늘로 올라가도 거기 당신이 계시고, 저승에 누워도 거기 또한 계시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 제가 새벽놀의 날개 달아, 바다 끝에 자리 잡아도, 거기서도 당신 손이 저를 이끄시고, 당신 오른손이 저를 붙드시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복음환호송◎ 필리 2,15.16 참조
◎복음◎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일어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
2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것보다,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편이 낫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4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언젠가 ‘평화방송’에서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의 인터뷰를 본 기억이 납니다. 윤 대주교는 교구장으로 지낸 삶을 회고하면서 1984년 5월에 있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광주 방문을 떠올렸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를 맞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교황은 다른 어느 곳보다도 광주를 꼭 가 보아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1980년 광주 시민들이 군부 독재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부르짖는 과정에서 너무나 큰 희생을 치렀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겪은 시련을 언급하면서 ‘용서’라는 주제로 역설하였다고 대주교는 회상하였습니다. 이에 인터뷰하던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광주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용서’라는 주제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지금도 의문점이 많지만 그 당시는 5·18 민주화 운동의 진상에 대해 정부가 확실히 밝힌 시점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 윤 대주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진상을 밝히는 것과 용서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용서란 잘못한 것에 대해 무조건 덮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잘못에 대해서는 철저히 물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하느님께 사랑받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아야지요.” 용서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우리는 용서란 상대방의 허물을 무조건 덮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서를 하는 것과 죄를 묻는 것은 별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악을 퍼뜨리는 죄 그 자체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싸움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의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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