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사람인 발레리우스의 아들로 로마(Roma)에서 태어난
성 젤라시우스(또는 젤라시오)는 로마 교회의 대부제(Archidiaconus)가 되었고,
492년 3월 교황 성 펠릭스 2세(Felix II, 3월 1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뽑혔다.
그의 성덕, 정의, 애덕 그리고 학덕으로 명성을 떨쳤던 성 젤라시우스는
그리스도 단성설을 지지하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에우페미우스(Euphemius)와의 문제로 곤경에 빠졌는데,
이 사건은 전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아카키우스(Acacius)에 의해 확대된
이단으로 동방과 서방 교회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4년 반 가량 재위한 그는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하였고,
로마 주교좌의 수위권을 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속 권력이 영적인 권능 아래 있어야 함을 강력하게 역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 “젤라시우스 교령”(Decretum Gelasianum)과
“젤라시우스 성무집전서”(Sacramentarium Gelasianum) 등이 전해오는데,
현대 학자들에 의하면 후대에 저술되었거나
젤라시우스 교황의 것으로 잘못 이해되어 이름 붙여진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