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 송영진 모세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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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노병규 | 작성일2013-11-26 | 조회수613 | 추천수10 | 반대(0) 신고 |
종말이 언제 오든지 간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종말이 언제 오는지 알고 싶어 했고, 그 시기를 계산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종말이 언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모른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 13,32)." '모른다.' 라는 말은 '알려고 하지 마라.' 라는 뜻이기도 하고,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계획을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들도 모른다는 말은, 신성으로는 알지만 인성으로는 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만일에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 확실히 알게 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 날과 그 시간이 몇 백 년 뒤, 또는 몇 천 년 뒤라면 지금 이 시대 사람들은 아무도 긴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 날과 그 시간이 몇 시간 뒤, 또는 하루 뒤라면 인간 세상은 대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급하게 속성으로 회개하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예 회개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좀 더 여유 있게 몇 년 뒤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려고 하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마르 13,32-37).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2012년, 1999년, 1994년에 종말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이 똑같이 나중에 했던 말은 '계산이 틀렸다.'였습니다. 원래 계산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산을 잘못했다고만 생각한다면 계속해서 그런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종말은 최후의 심판을 받게 되는 때이고,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날은 누군가는 영원히 멸망하는 때가 될 것이고, 누군가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와 있다고 하셨습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이 말씀은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최후의 심판도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회개를 할 수 없으니 종말이 언제 오든지 간에 살아 있는 동안에 회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자기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으니 지금 당장 회개해야 합니다. 사심판도 하느님의 심판이고, 공심판도 하느님의 심판이니 두 심판의 결과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각 개인의 죽음은 그 자신에게는 종말입니다. 인류 전체의 종말만 생각하고 자기 개인의 종말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전지구적인, 또는 전우주적인 재난이 닥쳐서 죽게 되든지, 자기의 수명이 다 해서 죽게 되든지... 하느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점에서는 하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회개'를 죄를 뉘우치는 일, 또는 고해성사로만 좁게 생각할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삶 전체를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일이 '회개'입니다.
요한 1서의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1요한 2,15-17)."
이 말의 '사랑'을 '두려움'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뜻이 통합니다. "세상을(또는 세상의 멸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어차피 지나가는(소멸되는)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니 영원하신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말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이 말씀을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의 멸망을 두려워하여라." 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종말의 재난 때문에 죽는 일이 자기 영혼의 멸망보다 더 두려운 일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마련하고, 피난처를 준비한다고 해서 종말 자체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에 혹시 피할 수 있어서 육신의 수명을 약간 연장한다고 해도 어차피 인간은 때가 되면 죽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영원히 멸망한다면, 종말의 재난에서 살아남아서 육신의 수명을 조금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송영진 모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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