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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탐구 생활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듣는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9-26 조회수6,439 추천수0

전례 탐구 생활 (24)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듣는다

 

 

지난주에 이야기한 두 개의 식탁 가운데 첫 번째 식탁(말씀 전례)의 ‘메인 요리’는 기록된 하느님 말씀입니다. 성경 독서는 단지 인생 교훈이나 영적 생활을 위한 묵상 자료 제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전례에서 우리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건네시는 하느님 말씀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인간적 영역을 배제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은 역사의 특정 순간에 특정한 인간 공동체들을 향하여 인간의 손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성경의 각 권은 인간 저자의 문체, 특성, 신학적 관점, 사목적 관심 등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사용된 ‘영감(靈感, inspiration)’이라는 말은 ‘하느님의 숨결’이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말에서 왔습니다.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2티모 3,16), 하느님은 거룩한 인간 저자들의 말을 통해 당신의 거룩한 말씀의 숨결을 뱉어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인성과 완전한 신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 현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저술하는 데에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선택하시고, 자기의 능력과 역량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활용하신다. 하느님께서 몸소 그들 안에 또 그들을 통하여 활동하시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저자로서 기록하여 전달하도록 하셨다”(11항).

 

따라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하시는 계약의 말씀을 들기 위해서 3일을 꼬박 준비했습니다. 미사에서 우리는 시작 예식을 통해 하느님 말씀과 만나는 이 거룩한 순간을 준비합니다. 성호경, 고백 기도, 자비송, 대영광송이 다 그런 준비 과정입니다. 우리 자신의 몸에 십자 성호를 새기고, 하느님 현존 앞에 합당하지 못함을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그분의 영광을 노래한 다음, 이제 자리에 앉아서 성경에 담긴 영감 받은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듣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과 말씀을 듣는 이들 사이에 살아있고 진지한 인격적인 만남이 생겨납니다.

 

말씀 전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깊은 의미를 제대로 깨닫기 위해서는 성경을 봉독하는 독서자의 역할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독서자는 회중 앞에서 성경을 읽는 이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미사에서 주님은 독서자를 당신 말씀을 백성에게 선포하는 도구로 삼으십니다. 독서자는 하느님 말씀이 한데 모인 하느님 백성 가운데 분명하게 울려 퍼지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하느님께 내드린다는 의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하느님 말씀을 봉독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영예와 특전인지 모릅니다. 또한 하느님 말씀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소리 신호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도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독서자와 선포된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신자들 위로 성 요한 사도의 말씀이 메아리치는 듯합니다. “말씀을 낭독하는 이와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묵시 1,3).

 

[2020년 9월 27일 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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