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혈통을 가진 성 다마수스( 다마소)는 아마도 로마에서 태어난 듯하고,
사제였던 자신의 부친 교회에서 부제가 되었다가,
366년의 치열한 선거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때 교황 선출에서 패배한 반대파는
우르시누스(Ursinus)를 대립교황으로 옹립하는 비극을 맛보아야 했다.
결국 이 분쟁은 반대파가 비극적 종말을 맞았으며,
우르시누스가
발렌티니아누스 황제로부터 유배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평정되었으나,
다마수스 교황을 반대하는 무리들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에 늘 도전하였다.
그의 선출은 로마(Roma) 시노드에서 무혐의로 판정되었다.
다마수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의 강력한 반대자였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에 대리자를 파견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단죄하는 교황청 교서를 수락케 하였으며,
성령은 신성이 없다는 마체도시우스의 교리를 단죄하였다.
그도 그의 재임 기간에는 동서방의 황제이던 테오도시우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회가 제국의 종교로 선언토록 하여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성서학자이던 다마수스는 성서의 정경을 발표하였고,
374년의 로마 회의를 통하여 올바른 성서를 명시하는 업적을 쌓았다.
유명한 성서학자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그의 비서였다.
그러므로 다마수스는 히에로니무스에게
성서 주석을 비롯하여 불가타 성서 번역을 부탁하였다.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그의 재임 기간에 이룩한 일은 가히 놀라울 정도이다.
또한 그는 교회 중의 최고 교회로서 로마를 선언하였고,
카타콤바와 성소, 순교자들의 무덤을 복원하였으며,
이곳을 순례하여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도록 격려하였다.
그는 위대한 교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