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29) 강론 그리스도교 전례의 초창기부터 하느님 말씀은 단지 읽고만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늘 성경 독서의 의미를 설명하고 실생활에 교훈을 주는 내용을 담은 강론이 이어졌습니다. 초기 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주교가 직접 주일 미사를 집전하며 강론을 했습니다. 이 초기 관습에서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암브로시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교부들의 전례 강론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성경 독서를 해설하는 전례 관습은 그리스도교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고대 유다교에 있습니다. 에즈라서에 보면 백성 앞에서 율법서를 봉독할 때 레위인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설명하면서” 읽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읽어 준 것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느헤 8,7-8). 유다교 회당도 이와 비슷한 관례를 따랐습니다. 성경 독서 다음에는 해설이 이어졌는데, 예수님도 이 관습대로 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읽은 성경 말씀을 풀이하셨고(루카 4,18-30),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마르 1,21; 루카 4,15). 강론은 신자 교육에 매우 중요합니다. 신자들은 강론을 통해 독서를 이해할 수 있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강론이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토록 크기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교 교육에서는 전례적 설교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계시 헌장 24항). 강론은 서품 받은 교역자(부제, 사제, 주교)만 할 수 있습니다. 미사에서 하는 복음 봉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성경 독서들은 수도자나 평신도도 할 수 있는 데 비해 복음 봉독은 부제, 사제, 주교에게만 맡깁니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는 - 그리고 주교가 자신의 권위를 나누어 주는 사제와 부제는 -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신 모든 것을 전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마태 28,18-20). 복음이 성경 전체의 심장이므로 서품 받은 교역자들에게만 복음 봉독을 맡기는 것은 복음이 가리키고 있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사도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의 권위’ 아래서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왜 서품 받은 교역자만 강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나 수도자가 사제나 부제보다 훨씬 더 뛰어난 말하기 능력을 지닐 수도 있고, 특정 주제에 대한 더 나은 신학적, 영적 요점을 짚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공동체 안에서 나눌 수 있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미사 강론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상적인 강론이 사려 깊고, 명료하고, 사람들을 빠져들게 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세련된 언변이나 통찰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서품 받은 교역자가 하는 강론은 개인적인 생각과 경험이 아닌 사도로부터 이어받은 교회의 신앙을 전달하고 있다는 표지 또는 보증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가 교회의 신앙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하지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을 가르치는 것은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의 특별한 책임입니다. 주교가 교황,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주교들과 이루는 일치는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신앙을 더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증언합니다. 사제와 부제는 그들이 받은 서품의 힘으로 이 특별한 책임을 나누어 받기에 그들 또한 미사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강론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전례 강론이 “거의 성사적 특성”을 갖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0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성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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