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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3주일 2014년 1월 26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4-01-24 조회수472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제3주일 2014년 1월 26일

마태 4, 12-23. 이사 8, 23-9,3.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네 명의 어부를 제자로 삼으신 이야기였습니다. 마태오복음서를 기록한 공동체는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 신앙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권위 있게 생각하는 문서는 구약성서입니다. 따라서 이 복음서는 예수님이 행하신 중요한 일마다 구약성서를 인용하면서 그것은 하느님이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도 예수님이 가릴래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하느님이 이미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말하기 위해 이사야 예언서를 인용하였습니다. 마르코복음서는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셨다.”(1,14)고 간단히 언급하는 일을 마태오복음서는 우리가 제1독서로 들은 이사야서(8,23)를 길게 인용하면서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복음 선포를 시작하신 것은 이사야 예언서가 이미 예언한 바였다고 설명합니다. ‘즈블론과 납탙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라는 긴 지명(地名)이 그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하신 일도 같은 이사야서(9,1)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어둠 속에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메시아가 장차 올 것을 예언하는 이사야서의 구절입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은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에게 빛을 주는 메시아의 일이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어둠 속에 주어진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른 복음서들에서도 확인됩니다. 요한복음서(1,4)는 그 서론에서 말합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초기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어둠을 밝히는 빛과 같은 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이라는 어둠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신 사실을 알리면서 모세가 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이 함께 계시기에 그 사실을 의식하고 사는 백성에게 필요한 그 시대의 지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는 율법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잊어버리고, 율법을 인간의 우열(優劣)을 가리는 도구 내지 사람들을 죄인으로 판단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은 구실만 있으면, 다른 사람을 비하합니다. 차별하고 버리고 죽이는 인간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구실로 그런 어둠의 역사를 꾸며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제사의례도 사람들을 어둠 속을 헤매게 하였습니다. 성전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물이었습니다. 인간이 자기 노동의 대가로 얻은 것을 성전에 가져와 제물로 바치는 것은, 하느님의 시선이 그 제물 위에 내려오게 하여, 자기가 얻은 것을 하느님의 빛으로 새롭게 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자기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둠을 버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빛으로 자기가 가진 것을 새롭게 보게 하는 의례였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사제들은 여러 가지 명목으로 제물 봉헌을 사람들에게 강요하면서 자기들이 풍요롭게 사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성전의 제물 봉헌을 폐기하자고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제사가 그 본연의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빛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사람들을 살게 하는 율법과 제물 봉헌이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믿으셨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자비의 빛을 받아 사람이 그 자비를 실천하며 살게 하는 지침이었습니다. 제물 봉헌은 인간이 노동하여 얻은 것을 하느님의 자비의 빛으로 조명하여 그것을 새롭게 보고, 이웃과 나누도록 초대하는 의례(儀禮)였습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은 어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족 외, 모든 사람을 외면하면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자기 주변을 봅니다.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효자는 부모로부터 빛을 받아 형제자매들을 보고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앙인은 하느님이 자비로우시기에 자기도 그 자비를 실천합니다. 하느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자기도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첫 제자들을 뽑은 다음,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복음, 곧 기쁜 소식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어떤 이유에서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비난하고, 성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둠속을 헤매는 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을 빙자하여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행세하겠다는 것은 어둠의 지배를 받는 일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말은 사람들에게 기쁨이고 행복이라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부르시자 ‘곧 바로 그물을 버리고’ 혹은 ‘곧 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입니다. 제자는 주저하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맹목적으로 혹은 광신적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물과 배와 부모를 버리고 떠나는 일은 한 순간의 경솔한 결단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이 예수님이 부르시자 제자들은 ‘곧 버리고 떠났다’고 말하는 것은 배와 그물과 아버지를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 안에 하느님의 빛을 보고, 주저도, 망설임도 없이 그분을 따라 나서서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복음서들이 예수님을 빛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생각하며 살던 우리 역사의 어둠 안에 자비롭고 베푸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예수님이 빛과 같이 나타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실천하여, 우리도 그분의 제자 되어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업이 무엇이든,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이든,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자각하고 그분의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 한 사람이 잘 살기 위해 의지하였던 이기심의 배와 욕심의 그물을 버리고, 출신과 가문을 의미하는 아버지도 떠나서, 예수님 안에서 깨달은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며 사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만 보는 어둠을 버리고, 예수님의 빛을 받아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 되어, 참으로 자유롭게 살라는 복음의 초대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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