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하늘나라의 꿈-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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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4-02-15 | 조회수1,046 | 추천수11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 .
2014.2.15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열왕기 상12,26-32;13,33-34 마르8,1-10
. .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 -하늘나라의 꿈-
.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들이 깨어있게 합니다. 회개하게 합니다. 감동하게 합니다. 분발하여 초발심의 자세를 갖게 합니다. 부러운 것들이 없어지게 합니다. . 부끄러워할 줄 알아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하늘나라의 꿈이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 어제 묵상 중 예수님의 눈빛은 둘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경외의 눈빛과 연민의 눈빛입니다. . 늘 하늘나라의 꿈을 사셨기에 막막한 현실에는 곧장 하늘을 바라보며 경외의 눈빛으로 기도를 하셨고, 이어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반복되는 가난한 민초들의 삶입니다. . 오늘 복음 장면에서도 예수님의 두 눈빛이 눈에 선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어제의 복음 구절에 이어, 오늘 복음에서도 분명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를 드리셨을 것입니다. .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 역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됩니다. 마음 막막하고 답답할 때 마다 간절한 경외의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기도드리셨고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민초들의 고난에 동참하셨습니다. . 바로 예수님의 지혜와 기적도 경외와 연민의 눈빛에서 유래됨을 봅니다. 경외와 연민의 마음이, 눈빛이 하느님을, 민초들을 감동시켜 움직이게 하셨던 것입니다. . 하늘나라의 꿈 있어 경외와 연민의 눈빛입니다. 세월 흘러 늙어가면서 덧없이 사라져갈 환상 같은 거짓 꿈들입니다. . 수도원을 방문한 동창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도 뇌리에 선명합니다. ‘요즘 불쌍한 노년인생들이 넘친다. 꿈이 없다.’ 비단 꿈이 없기로는 노년 인생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꿈이 없어 보입니다. . 꿈을 잃어 무너져 내리는 영혼이요 육신입니다. 영원한 청춘의 젊음을 살게 하는 유일한 참 꿈은 하늘나라의 꿈, 하느님 꿈 하나뿐입니다. 도대체 이 꿈 말고 무슨 꿈이 있겠습니까? . 늘 하늘나라의 꿈을 꾸며 경외와 연민의 눈빛으로 살았던 예수님은 나에겐 끊임없는 도전이 됩니다. 나를 부끄럽게 하며 깨어있게 합니다. . 어제 사진전을 개최한 박노해 시인(‘산위의 마을’에서 하늘나라의 꿈을 현실화하는 박 기호 신부의 아우)의 인터뷰 기사도 나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신선한 충격의 감동이었습니다.
. -앞으로만 나아가는 서구적 사고가 아닌 행위의 과정과 결과를 아우르는 ‘순환’적이고, 무의미한 욕심은 내지 않은 ‘순수’함,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순명’하는 지혜가 아시아의 힘이다. . -사람 하나 없는 풍경 사진도 있다. 그런데 난 ‘문’을 중시한다. 문양할 때 ‘문(紋)’이다. 인간 삶의 무늬가 새겨진 풍경이냐가 중요하다. 자연 자체의 비경보다 이름 없는 민초의 위대한 일상이 수천 년, 수백 년 겹겹이 수놓아진 그런 풍경을 찍는다.- . -물질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으로 무너뜨리려는 투쟁, 그러나 그 너머의 인간근원의 것, 물질적인 너머에 있는 것을 향한 사랑의 투쟁이어야 한다.- . -순광(順光)에 빛나는 것은 아주 장대하고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역광(逆光)에 빛나는 것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역경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지, 귀족 가문에 흠집 하나 없는 인물이 아니다. . -여기 사진 속,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자연을 망치지 않고,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고, 우월감으로 군림하지 않고,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품위 있게 살아간다.-
.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깊은 지혜를 담은 복음적 사진입니다. 시인의 눈은 이미 하늘나라의 꿈에 닿아있음을 봅니다. 무수한 통찰의 지혜로 반짝이는 잠언의 모음집 같은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 10-40대까지 많은 관람객이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감동의 눈물, 각성의 눈물, 부끄러움의 눈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 말 한마디 없어도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더불어 시인의 인터뷰 기사가 나를 참으로 부끄럽게 했고 분발케 했습니다. . 반면 하늘나라의 꿈을 잃었을 때 그 비참한 상태는 1독서의 예로보암 임금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 복음의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꿈을 실현한 빛의 ‘충만한 삶’을 상징한다면 독서의 예로보암은 하늘나라의 꿈을 잃은 어둠의 ‘허무한 삶’을 상징합니다. . 무죄한 백성들을 금송아지 우상들 앞에 예배하고 제물을 바치도록 했으며 제 멋대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며 방종과 파탄의 삶을 살다가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된 예로보암 임금과 그 집안입니다. . 하늘나라의 꿈을, 하느님 꿈을 잃었을 때 그 자리에 곧장 자리 잡는 온갖 우상들이요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희망이 없는 삶입니다. .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늘나라의 꿈을 현실화하며 살게 하십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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