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픈 마음까지도 들을 수 있는(마르 8, 22-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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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은영 | 작성일2014-02-21 | 조회수52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픈 마음까지도 들을 수 있는(마르 8, 22-26)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 오늘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가서 눈에 침을 바르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 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하고 대답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는 다릅니다. 두 번 하신 일 이지만 우리 인간이 할 때는 몇 달이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번에 나누어서 한 번은 흐릿하게 보이고 다시 하실 때는 명확하게 보이게 되었는데 그 시간차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몇 분 안 걸리는 시간 이지만 영적인 시간으로 볼 때는 이것이 몇 달 몇 년 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이지 인간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어마어마하게 긴 기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치유해 주실 때 즉각적으로 치유 될 때도 있지만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기도하면서 점진적으로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작년에 생리통이 심해 고통스러워하던 소녀가 엄마하고 성당에 왔다가 우연히 저를 만나서 제가 안수 해주고 생리통이 치유가 됐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 그런 경우는 즉각적으로 치유가 일어난 것이고 또 그 이야기를 듣고 생리통이 심한 어떤 자매님이 사람들이 많은 틈에서 제게 안수해 달라고 했는데 안수 받고 치유가 됐다고 얼마 전에 그 분이 얘기를 해서 알게 됐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하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는데,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완전히 치유가 되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성이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물론 다 그렇게 똑같이 고통을 겪진 않지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어쨌든 주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치유시켜주는 경우도 있고 점진적으로 치유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시몬 형제는 앉아서 미사를 드렸었지만 지금은 서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는데, 처음엔 서 있을 때 많이 구부러지고 흔들려서 불안해 보였지만 지금은 서 있을 때에도 많이 안정이 되고 편안해지고, 걸어 나올 때도 처음보다 점점 더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앉아서 편안하게 성체를 영하지 저렇게 힘들게 하는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인데, 하느님은 의지적으로 노력하도록 해서 극복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것입니다. 사고 후 이십 년 동안 안 쓰던 근육을 한꺼번에 쓰게 되면 근육이 파열 된다든지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점진적인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치유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듣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들으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찔리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찔리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입으로 혀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후회를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듣기는 빨리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 가벼워서 흥분하고 말하고 뱉어내고 그리고 후회하고 이런 모습들을 우리가 굉장히 많이 반복하면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하면 듣기를 빨리하고 제대로 들을 수 있는가 듣기만 잘해도 그 사람은 정말 훌륭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을 잘 못합니다. 누군가 어려운 이야기를 말 할 때는 그 사람이 말 하는 뜻이 뭔지, 그 뜻도 알아들어야 하고, 화가 난 마음. 슬픔이면 슬픔, 고통스러운 감정까지도 같이 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담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아픈 마음까지도 대신 아파줘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을 다 들어주기 때문에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이 다 빠져 나오고, 그래서 그 사람이 가벼워지고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저 신부님은 듣는 게 취미이니까, 하느님이 은사를 주셨으니까, 물론 은사를 주셨으니까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사람의 아픈 마음을 공감하면서 듣기 때문에 그 사람이 치유되고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자녀들이 말 할 때 말마디만이 아니라 말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사람의 감정, 속상함, 초조함, 이런 마음까지 같이 듣기 시작하면 가족이 내가 듣는 그 마음을 통해서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아 힘들어 죽겠네’ 했을 때 ’다 해주는 밥 먹고, 등록금 다 내주고, 뭐가 그렇게 힘들어. 버릇이 그게 뭐야‘ 이러면 듣는 게 아닌 것입니다. 듣는 것을 빨리하라는 것은 저 사람이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말했는데, 말에 담겨진 의미가 뭔가 뜻이 뭔가, 저 사람의 마음이 어떤 가하는 것까지 빨리 알아차리라는 뜻입니다. 마음까지도 알아차리게 되면 “뭐가 속상한 일이 있구나, 우리 사랑하는 아이야 뭐가 그렇게 힘드니 엄마한테 얘기 해 줄 수 있니?’ 하고 이야기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의 한 마디 말이 화나고 속상한 마음을 치유시켜 주게 되는 것입니다. 치유자는 하느님이지만 우리를 도구 삼아서 치유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상대가 말을 하면 가슴깊이 듣기 보다는 저 사람이 말한 내용만 듣고, 내가 뭐라고 답변할까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까 제대로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듣고 감정도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잘 듣는다는 것이 참 힘듭니다. 듣다보면 좋은 얘기는 별로 없습니다. 때로는 내 안에서 인내심의 한계에 도전 받을 때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럴 때는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며 화살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 상담하는 한 시간을 누가 고통 중에 있는데, 누가 의식을 잃고 있는데, 그 영혼을 위해서 인내하고 참으며 희생의 기도로 봉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저절로 치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손 만 뻗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항구하게 기도하고 희생함으로서 그런 은사가 주어지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저와 같은 마음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미사 때 지향을 계속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평화 통일을 위해서, 성직자들의 성화를 위해서, 냉담자 들을 위해서, 태문을 열어주시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 계속 지향을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해 주신다고 하셨지만, 그것에 대해 믿고 또 계속 청해야 되는 것이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같이 한 마음이 되어서 그런 지향을 둘 때 정말 주님 저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럴 때 여러분 자신의 마음도 변화되고, 성화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듣기는 더디 하고 말하기는 빨리하게 되면 변화도 열매도 없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듣는 것을 내용과 마음과 간절함과 하느님의 뜻까지도 하느님의 마음까지도 듣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상담 공부 시작할 때 일주일 동안을 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가 스무 가지가 넘었습니다. 월요일 마다 쉬어야 하는데 삼년동안 쉬는 시간을 다 반납해야 되고, 일주일에 두 번 씩 서울에 올라가야 되고, 또 돈도 많이 들어가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데 그렇게 해야 된다는 거, 거기다 나도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 사제가 다른 의사에게 상담 받는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러나 해야 되는 한 가지는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수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수많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 때문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시다는 그 마음이 저에게 전달이 되어서 ‘저에게 하느님 그 마음을 주십시오.’ 그렇게 청하고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저의 노력 하나 하나를 하느님께서 보시고 은총을 내려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 ‘그냥 예쁘니까’ 하고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하나하나 가 모여져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미사에도 처음에는 반짝 많이 나오다가 다시 줄어들고 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항구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미사 중에 우리 마음 안에 주님께 항구한 마음, 절절한 마음, 겉으로만 허투루 듣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아픈 마음까지도 들을 수 있는 누구든지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서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 같이 치유할 수 있는 치유자가 되게 해 달라고 이 미사 중에 간절히 간절히 청합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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