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올 수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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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정임 | 작성일2014-04-23 | 조회수68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올 수 있는가?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을 굴려 치워주시는 분(마태 28,2)
신앙인이면 누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다. 그럼 누가, 어떻게 해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뵐 수 있는지 마리아 막달레나를 통해 배우고자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3년여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다. 그렇지만 모든 말씀을 다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가르침은 깨달았겠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은 듣기는 참으로 많이 들었겠지만 깨닫지는 못했다고 복음서는 전하고 있지 않은가?
이 모습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오랫동안 교회에 들어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지만 우리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어떤 말씀, 곧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해서는 온전하게 이해하고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있는 것은 그런 마리아 막달레나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었다는 데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그런 은총의 수혜자가 될 수 있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는 못하였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고 느껴진다.
우리도 그녀처럼 모든 말씀을 다 이해하고 깨닫지는 못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한결 같다면, 그녀가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이 밝아 올 무렵 무덤을 보러 간 그 마음 이 무엇인지 깊이 보아야 한다고 느껴진다.
이 말씀의 의미를 나의 삶 안에서 이렇게 묵상해 보고 싶다. 나도 교회를 통해 수없는 많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살지만 다 이해하고 깨닫지는 못한다. 그러나 나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이른 아침 주간 첫날 교회로 가야 한다. 곧 미사를 참례해야 한다는 것으로 다가온다.
또한 성경을 읽거나 기도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무덤을 찾아가는 길과 비슷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든다. 무덤에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무덤을 찾아갔기에 그곳 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 않았는가? 그 무덤은 나의 삶에서 무엇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셀 수도 없이 많은 무덤을 만들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죽이기도 하고 또는 내가 남을 죽이기도 하고, 남이 나를 죽이기도 하고 그렇게 저렇게 만들어진 무덤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생각해 본다.
그 무덤을 찾아가면 그 무덤을 보지 않으려고 막아 놓았던 돌을 치워주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보았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갔을 때 바로 하느님의 천사가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을 직접 치워주셨지 않는가?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하지 않고 있다. 그냥 무덤이라고 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우리의 무덤을 보기 위해 달려가기만 한다면 그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치워 주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또 만나 주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하여 그 믿음으로 무덤으로 달려 감...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올 수 있는 시작임을 볼 수 있었다.
아, 나도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마음으로 나의 무덤으로 달려가고 있다. 거기서 주님은 무덤을 막은 돌을 치워주시고 만나 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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