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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사] 전례 탐구 생활43: 신앙의 신비 안에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4-13 조회수3,899 추천수0

전례 탐구 생활 (43) ‘신앙의 신비’ 안에서

 

 

성체성사가 세워진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1코린 11,23)부터 이어지는 극적인 사건들이 있습니다. 성찬례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사건들을 단순히 상기시키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성사적으로 재현합니다. 베네딕도 16세는 성체성사에 깊숙이 스며든 그 신비를 이렇게 풀어 말씀하십니다.

 

성찬례를 거행할 때마다 우리의 생각은 파스카 성삼일로, 곧 성목요일 저녁의 사건들, 최후의 만찬과 그 이후의 일들로 되돌아갑니다. 성체성사의 제정은 게쎄마니 동산의 고뇌를 시작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들을 성사적으로 앞당깁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다락방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로 내려가시어 올리브 동산으로 가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지금도 그 동산에는 매우 오래된 올리브 나무들이 있습니다. 아마 이 나무들은 그날 그리스도께서 고통 중에 기도하시며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질 때”(루카 22,44) 그 나무 그늘 밑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전에 성체성사를 통하여 교회에 구원의 음료로 주신 그 피가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피 흘림은 해골산에서 우리 구원의 도구가 됨으로써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시면서도 당신의 시간 앞에서 도망가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해 주기를 바라셨으나, 외로움과 버림받음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오직 요한만이 성모님과 충실한 여인들 곁에서 십자가 아래 남아 있었습니다.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고통은 성금요일의 십자가 고통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시간, 세상 구원의 시간. ……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함께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는 모든 사제는 마음으로 그곳, 그 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 그러고 나서 교회는 부활 시기 동안 이렇게 선포하며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셨도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도다. 알렐루야.”(「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3-4항)

 

그러므로 사제가 예수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두고 제정하신 말씀을 읽음으로써 부활하신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실제로 현존하시게 되는 축성의 순간에는 파스카 삼일의 신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분도 채 안 되는 저 짧은 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삼일의 신비가 압축되어 있고, 또 바로 그 신비가 세기의 흐름을 건너뛰어 오늘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비, 그리고 그 신비가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달된다는 신비, 이 이중의 신비 앞에서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 하고 외치고 신자들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성찬례를 거행하고자 모인 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놀라움에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특별히 성찬례를 거행하는 집전자는 더욱 이러한 놀라움에 가득 찹니다. 성품성사에서 받은 권위로 축성을 이루는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사제들이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비를 간직한 사람”(1티모 3,9)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성체성사가 하느님의 말씀에 완전히 자신을 내맡기기를 요구할 정도로 우리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신앙의 신비라면, 그러한 마음 자세를 갖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 분은 성모님 밖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보여주신 어머니다운 관심으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내 아들의 말을 믿어라. 그가 물을 술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면, 빵과 포도주도 그의 몸과 피가 되게 하고, 이 신비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부활의 생생한 기억을 전해 줌으로써 ‘생명의 빵’이 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54항)

 

[2021년 4월 11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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